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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산 사람, 최동원

2022.09.03. 오후 8:40
by 곽한영

* 오는 9월 14일은 부산 사람, 최동원 선수의 열 한 번째 기일입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5년 전 그의 기일에 썼던 글을 전해드립니다.

. 부산대에 임용되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변에 전했을 때 가장 놀라운 것은 부산 출신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하나같이 다들 너무 좋겠다, 나도 꼭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정말 좋은 곳이다 라며 견딜수 없이 부러워했다. 고향 대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매우 어색한 반응들. 더 놀라운 건 부산에 내려와서 본 풍경들. 지옥같은 교통과 평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갑갑한 스카이라인(초등학생이었던 큰 애가 지리시험에서 ‘아파트는 어디에 짓나요?’라는 문제에 ‘들’ 대신 ‘산’에 동그라미쳤다가 틀리고 무척 억울해했다. ‘부산은 다 산 위에 아파트하고 학교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사방 다 전투모드로 대화하는 사람들. 도대체 왜 친구들은 부산을 그리워하는거지?

. 일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는 야구중계, 오늘은 최동원 추모경기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볼륨을 죽여놨기 때문에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그의 영상들을 보면서, 그 위에 겹쳐지는 부산 사람들의 표정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가 부산이다.

. 모든 부산 사람들이 최동원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부산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부산다운 사람이 최동원인 건 맞다. 그는 ‘부산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온몸에, 인생의 모든 장면에 새겨놓은 아이콘이자 신화다.

. 부산 사람들 정말 야구 좋아한다. 아니, 전반적으로 노는 것이라며 뭐든 좋아하고 ‘잘’ 논다. 누구나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산은 동네마다 색소폰 강습소가 있다. 색소폰은 ‘폼나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노래방의 원조도 부산이고 지붕 열리는 디스코텍도 부산이 먼저였다고 한다. 맛집도 많고 멋쟁이들도 많다. 부산에서 야구는 ‘야구’만이 아니고 그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집합체다. 개성있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맛있는 것을 마구마구 먹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고 논다. 야구는 그 모든 것들의 핑계이자 핵심을 이루는 흥의 원천이다. 그러니 야구 잘하는 사람을 예뻐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송승준 선수가 3연속 완봉승을 했을 때 가는 식당마다 돈을 안받고 자꾸 음식을 내줘서 이러다 팬들이 집도 사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본인은 농담이었겠지만 부산에서는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야구만 잘하면 부산에서는 삼대가 먹고 살 수 있다.

.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야구를 잘하기로만 따지자면 최동원보다 더 나은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동원은 단지 '잘하는 선수' 그 이상이었다. 최동원의 가장 전설적인 에피소드인 1984년 한국시리즈, 7경기 중 1,3,5,6,7차 전 자그마치 다섯 경기를 한 경기 건너 한번씩 나오며 결국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하지만 자신의 어깨는 망가져버리고 말았던 그 불꽃같은 나날들의 가운데 당시 강병철 롯데 감독과 나눈 대화는 최동원의 모든 것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 이게 부산식이다. 하면 하는거고 아니면 끝이다. 중간은 없다. 말은 ‘해보입시더’지만 해보다 만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하겠다는 거고, 끝까지 가겠다는거다. 이미 손익계산 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웠다는 뜻이다. 선배든 후배든 친구든 동네 사람이든 아니면 그냥 오가다 만난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이라고, 혹은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두 번 세 번 재지 않는다. 좀 아닌 것 같아도 밀고나가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웃고 넘긴다. 그러다보니 좀 어리숙한 것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리숙한게 아니라 자존심이 강한 것이다. 내가 믿음을 준 상대에 대해 내 자신의 판단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존심이 손상되었을 때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끝’이 제대로 발동된다. 예전에 이대호 선수가 롯데와의 연봉협상 과정에서 최종적인 협상액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없이 돌아서서 외국으로 나가버린 것은 롯데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최동원이 그랬다.

- 나에게 야구가 뭐냐고요? 최.동.원. 이름 석자지.

야구가 그에게 중요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가 야구에 중요한 인물이라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는 부산 사람이었다.

. 그는 옳은 사람이기도 했다. 부산 사람들은 보수적이다. '보수'는 지난 오랜 세월동안 우리 역사의 탁류 속에서 더럽혀진 적도 있는 단어이지만, 기본적으로 보수란 윤리와 도덕, 상식과 옳음에 민감하고 그 가치를 높이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니 그라모 되긋나?’라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이 나올 정도면 이제 절대로 앞으로 더 나가면 안된다. 그만큼 부산 사람들의 ‘옳음’에 대한 관념, 선(line)은 확고하다. 최동원은 그 옳음을 위해 몸을 던질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타 플레이어로서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있던 그는 자신의 문제도 아닌 동료, 후배들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해보고자 프로구단들이 백안시하던 선수회를 결성하려 했다. 87년 6월 항쟁이후 노동자대투쟁으로 온나라가 타오르던 시기, 선수회는 곧 ‘노조’를 의미했다. 그는 갖은 고초 끝에 롯데에서 쫓겨나 삼성, 미국 등지를 떠돌다가 결국 쓸쓸히 은퇴를 맞게 된다.

. 야구를 잘하고, 결단력 있고 그리고 자신을 던질 줄 아는 멋진 사람 최동원,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부산 사람들이 최동원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본 것, 억울한 것은 잘 잊는다. 그런 거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가는게 피곤하고 쪼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기엔 흥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신세진 것 특히 미안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누군가 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하면 자다말고 나가서 그 집 유리창이라도 닦아줘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그런 부산 사람들에게 최동원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어깨가 부서져라 공을 던져 우승을 가져다 주었고, 노후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야구계의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다가 인생을 망쳤다. 그런데 그가 롯데 구단으로부터, 프로야구의 기득권층으로부터 핍박 받을 때 ‘우리’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고, 그가 당선이 보장된 민자당의 유혹을 뿌리치고 야당인 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낙선의 고배만을 건네주었으며,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마지막으로 그의 곁을 지켜준 건 당연히 그랬어야 할 부산 사람들이 아니라 대전의 한화 이글스였다.

. 손에 야구공을 꼭 쥐고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 부산 사람들은 그에게 갚을 길 없는 빚을 지게 되었다는 걸 먹먹한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롯데는 부산의 인기 구단이지만 또한 영원히 부산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 롯데가 수 십번 우승을 한다해도 최동원의 시대를 거쳐온 부산 사람들은 그 양면적 감정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최동원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 오늘, 최동원의 추모경기는 최동원의 황금빛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벌써 목이 메어서 차마 볼 수 없었다. 오늘 롯데 선수들은 모두 1984년의 그 유니폼에 ‘최동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왔다. 우리 모두가 최동원이라는 뜻이다.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부산 출신 친구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은 해운대도, 광안리도, 금정산도 아니고 바로 이 부산 사람들, 부산의 이 많은 최동원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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