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추진 와중에 “우리도 재건축하자”…내홍 겪는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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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23. 오전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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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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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강선, 평촌 한가람 등
수도권 리모델링 추진 단지
안전진단 규제 완화되자
재건축 주장 목소리 커져


“리모델링 추진이 진행중인데 요즘 재건축을 하자는 분들이 나와서 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새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갈등만 깊어지니 답답합니다.”

리모델링 추진 중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는 “정부가 재건축 중심의 규제 완화 발표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서울 사당동 제일로 300세대 미만 소규모 아파트다. 단지 규모가 작고 안전진단 점수가 높게 예상돼 리모델링 추진이 힘을 얻는 상황이었다. 리모델링 조합설립 동의서도 63%까지 받았는데 최근 정부가 재건축 규제완화를 발표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부 주민들이 재건축을 하자며 리모델링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리모델링 추진이 힘을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주민들의 노력이 들었는데 이제와서 재건축과 리모델링으로 나눠 싸움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또 “재건축 위주 규제완화만 나와 리모델링 단지들은 소외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정부에서 재건축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용적률을 대폭 늘려주는 1기신도시 특별법이 나오자, 1기신도시 내에서 리모델링을 준비하던 단지들은 ‘리모델링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리모델링도 주거환경 개선이 되는만큼 규제완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신도시 [사진 = 연합뉴스]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일산 강선마을 14단지, 안양 평촌 한가람 단지, 평촌 목련2단지 등 수도권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내부적으로 재건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안전진단 허들이 낮고 사업 속도가 빨라 재건축 규제가 강화된 지난 정권에서 ‘재건축’의 대안으로 부상했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선회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 7일 용적률을 높여주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을 발표하자 1기신도시 내 리모델링 추진 단체들은 발칵 뒤집혔다.

특별법은 일산, 분당, 평촌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택지지구와 지방 노후 도시에 대해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이고,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는 재건축 연한인 30년보다 짧은 20년을 특별법 적용 기준으로 삼았다.

이미 300%에 가까운 용적률 탓에 재건축이 어려워 리모델링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던 조합들은 정부가 재건축 용적률을 500%까지 올려주겠다고 하자 “차라리 이럴바에 재건축하자”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많은 안양은 일대 혼란에 휩쌓였다. 안양시에 따르면, 안양은 54개 단지 중 28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리모델링을 추진중인 평촌 한 아파트 단지 주민은 “재건축이 좋은건 다 알지만, 용적률이나 사업성이 안나오니까 리모델링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와서 정부가 용적률을 높여준다고 하니 이건 리모델링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냐”고 했다. 또다른 주민은 “특별법 발표 전에는 무조건 리모델링해서 신축에 살아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법 발표 이후 리모델링이 나을지 재건축이 나을지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괜히 정부 발표로 재건축 기대감 품고 세월을 낭비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오르고 집값은 떨어지면서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이든 추진 동력이 많이 약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리모델링이냐 재건축이냐를 놓고 다툼이 심해지면서 “주민들간 싸움으로 힘들게 추진해온 리모델링 사업도 결국 좌초되는 것”이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일산 한 주민은 “리모델링을 동의했더라도 요즘 분담금 걱정에 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이제는 용적률도 재건축을 더 준다고 하니 리모델링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름없지 않냐”면서 “정부가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에게도 힘을 실어줘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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