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물고기 잡는 법’ 배우려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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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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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해 정치부장

문재인정부 당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신기루가 퍼졌을 때 한·미 국방장관의 겉모습은 달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020년 2월 말,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갖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다. 한·미가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나 연기를 당근책으로 제시했을 때다.

정 장관은 그해 2월 27일 미국 국방대에서 연설을 통해 “하나의 훈련이나 연습이 취소된다고 해서 군사대비태세가 약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워싱턴특파원으로 근무했던 필자에게 한 미국인 전문가가 “왜 한국은 외교부 장관이 하는 말과 국방부 장관이 하는 말이 똑같은가”라고 진지하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전문가는 이어 “그렇다면 지금까지 했던 일부 한·미 훈련은 총알 낭비, 돈 낭비였는가”라고 반문했다.

마크 에스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의 말은 달랐다. 그는 북한을 향해 오늘밤이라도 싸울 수 있다는 의미의 “파잇 투나잇(fight tonight)”을 외치고 돌아다녔다. 에스퍼 장관은 같은 해 1월 2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적 관점에서 여전히 필요하다면 우리는 ‘오늘밤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합의 도출을 위해 외교관들의 외교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예스맨’이라는 뜻에서 ‘예스퍼’로 불렸다. 그랬던 그도 ‘파잇 투나잇’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외교관에게 맡겨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국방부는 압력을 가하고 국무부는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협업을 추구했던 것이 미국의 전략이었다.

지난 13일 열렸던 북·러 정상회담은 충격파를 던졌다. 뉴욕타임스가 ‘왕따(pariah)’라고 표현한 두 정상은 무기 거래 논의를 감추지 않았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대전차미사일 등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군사정찰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제공한다는 것이 북·미 무기 거래 논의의 핵심 내용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 기자로부터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에 도움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가 여기(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온 이유”라고 답했다. 인공위성 기술 이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공식 만찬에서 “악의 결집을 벌하고 신성한 투쟁을 벌이는 러시아군의 위대한 승리를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명분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악에 맞서는 성전(聖戰)에 비유한 것이다.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까지 운반하는 발사체의 기술은 ICBM의 기술과 동일하다. 러시아가 인공위성 기술이라는 포장으로 우주발사체 기술을 이전할 경우 북한은 ICBM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러시아로부터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이 넘어갈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은 무시무시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은 지난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3국 협력 수준을 새로운 핵심 협력체 단계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불안감은 우리 내부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대표적이다. 2023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은 무기 개발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누비는데 우리는 102년 전인 1921년 6월에, 그것도 러시아령 자유시(알렉세예브스크)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발이 묶인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북한에 대한 저자세도 문제지만, 해묵은 이념 논쟁도 빨리 벗어나야 할 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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