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을 찾아간 보디사뜨바
“이제라도 부처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아라한 아니, 우리는 부처 아니라 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 대통령이 아니고, 아버지라고 해서 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아버지 모두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인정을 받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통해서 불보살이 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까요? 아니 스스로 어떻게 인가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고통을 여읜 불보살처럼 오로지 보리심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그가 바로 보살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책은 ‘보살되기’ 어쩌면 ‘보살 따라하기’의 매뉴얼[지침서]입니다. 이 삶이 연극무대와 같다면 이 책은 삶의 주연이자 조연으로서 주인공인 우리가 읽어야 할 ‘연기 교본’입니다. 이 책대로 완벽히 소화한다면 우리는 다름 아닌 이미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이제라도 깨우친 사람으로서의 아라한을 넘어, 고통에서 벗어나 보살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예비 수행의 필독서로 정했나 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보살은 그냥 자기 혼자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가진 후에는 그 깨달음을 나누는 보시와 회향을 하며 중생구제를 하는 분입니다.
즉, 우리가 고통을 만났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수호자이자 도우미 같은 존재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거꾸로 가장 낮은 곳, 아니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자리가 바로 보살입니다. 여기서 당장 남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분이 바로 보살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러분은 보살인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정보의 바다에서 누구나 부처님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이나 보살이 아니며 하물며 깨달은 아라한이나 선지식도 아닙니다. 요즘 깨쳤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입만 보살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깨친 이의 실체는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 나아가 일상의 실천이라는 습관에서 다 증명됩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삶이 이타행(利他行) 나아가 보리행이신 분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수십 년 암자에 틀어박혀서 공부하고 깨쳤다고 하는 못난 분보다 더 불보살 같은 자비로운 분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불교도 인가 여부를 떠나서 사실 여부가 증명이 안 되는 엘리트주의를 깨고, 재가불자를 포함하여 비구니는 물론 여신도 모두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가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깨달은 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런데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하셨습니까?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되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나 그중에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적멸에 들어가 해탈 열반하면 되나요?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해야겠지만 정말 해탈은 있는지, 있더라도 그 열반에 우리가 갈 수 있는지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도 있습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열반에 든 부처님보다는 우리와 함께 하는 보살이 더 반갑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라한을 찾아간 산티데바는 용수보살과 마찬가지로 보디사트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