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부장판사들 “그냥 혼자 일할래요”…법원까지 불어닥친 ‘MZ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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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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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법조인들 워라밸 추구
늘어난 일거리 고참이 떠맡아
“차라리 단독재판이 편해”


법원. [사진 출처=연합뉴스]
“같이 으쌰으쌰해서 열심히 일해보자는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요새 부장판사들은 차라리 혼자 일할 수 있는 단독재판을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최근 고연차에 속하는 부장판사들 사이에서 다른 저연차 판사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합의부 부장’ 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업무량을 늘려야 하지만, 소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시하는 ‘MZ 판사’들이 예전처럼 부장판사들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MZ 판사들은 부장판사들이 업무량을 늘리자는 요청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1개 재판부가 맡아서 처리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건 수는 한 달에 약 200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하루 최소 10건 안팎의 판결문을 써야 한다. 그러나 최근 처리해야할 재판이 늘어나자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다.

서울 소재 법원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사건 수가 한달에 300~400건이 넘어서는 때가 종종 있다”면서 “부장판사가 ‘판결문 작성량을 좀 더 늘리자’고 해도 배석판사가 ‘이전에 하던 만큼밖에 못한다’는 식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맡은 사건이 누적돼 재판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부장판사들이 끙끙 앓으면서 혼자 더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이 같은 이유로 최근에는 합의부 말고 혼자 일할 수 있는 단독재판을 맡겠다고 나서는 부장판사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법관 권위 의식 타파’ 등을 겨냥해 도입된 인사제도가 MZ 판사들의 워라밸 중시를 표면화시킨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등 사법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로 인해 명예와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를 잃은 젊은 판사들이 워라밸을 쫓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로스쿨 제도 역시 한몫했다는 평가다. 사시 때는 연수원에서 모든 법조인들을 상대로 획일화된 도제식 교육이 가능해 선후배 간 결속도 다질 수 있었지만, 로스쿨 시행 이후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환경을 거친 법조인들이 늘면서 법원 내부 분위기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부족한 법관 증원을 위해 일정 기간 이상 법조 경력을 갖춘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판사 임용시험을 치르고 있지만 실제 재판 지연 해소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판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다. 2025년에는 7년, 2029년에는 10년으로 필요 경력이 늘어난다.

다른 부장판사는 “아무리 신임 판사라고 해도 7~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법조인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젊은 판사들에게도 지시할 때 눈치가 보이는데 7년차 이상에게 야근하라는 말을 할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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