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2번째 폐지 위기…시민단체 반대 여전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여성가족부는 올초 '부처 폐지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불안 요소를 안고 업무를 시작해야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한 줄 공약을 계기로 존폐 논란에 다시금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9개월여 뒤인 지난 10월, 행정안전부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주요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넘기는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공은 국회로 넘어간 상황이지만 여야가 입장차만을 확인하고 있어 여가부는 안갯속에서 새해를 맞게 됐다.
◇ '한 줄 공약'에서 시작된 폐지론…'정부조직 개편안'으로 쐐기
'여가부 존폐 논란'의 시작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인 지난 1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 공약을 올렸다.
이어 이틀 뒤인 1월8일에는 "더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당선 직후인 지난 3월13일에는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등 인수위 인사를 직접 발표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갖고 "더 효과적으로 불공정과 인권 침해, 권리 부재를 위해 효과적인 정부 조직을 구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가부 흔들기'도 계속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 6월15일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만나 "여가부가 그동안 성과는 별로 없고 예산만 축내는 부처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성별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여가부가) 갈등 해소를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가, 방관만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7월4일에는 여가부가 지원하는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성평등 문화추진단) 4기가 출범한 것에 대해 "여가부 장관과 통화하여 해당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전달했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권 의원은 한 달여 뒤인 8월13일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전면 중단된 데 대해 관련 단체와 더불어민주당에서 비판이 나오자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자기 돈으로 자기 시간 내서 하면 된다"고 일관되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후 정부 출범 5개월여만인 지난 10월6일 행정안전부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주요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여가부가 폐지되고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 증진' 등 주요 기능이 보건복지부로 이관된다. 복지부에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신설돼 관련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여가부가 맡던 '여성고용'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김현숙 장관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으로 말미암아 "여가부 정책들이 보건복지, 고용노동 정책과 연계돼 현재보다 더욱 확대·강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지난 10월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조직 개편 방안 관련 설명회에서 "2001년 여가부 출범 이후 지난 20여년간 호주제 폐지 등 여성의 지위 향상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변화된 사회환경과 청년층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했고, 젠더갈등, 권력형 성범죄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미니부처인 여가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구감소와 가족구조의 변화, 성별, 세대간 갈등, 아동·청소년 문제 등 당면 현안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부 조직 형태로 변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 여가부 격랑의 21년…이명박 정부 이어 2번째 폐지 위기
이로써 여가부는 출범 이후 2번째 폐지 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에 따라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로 신설된 지 21년 만이다.
당시 여성부는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 복지부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보호, 성매매 방지 등을 넘겨받아 독립 부처로 출발했다.
2004년에는 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받은 데 이어 2005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복지부의 가족정책 기능까지 이관받아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됐다.
여성가족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첫 폐지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따라 복지부에 통폐합될 뻔했으나 여성계의 반발로 2008년 가족·보육정책을 다시 복지부로 이관하면서 '여성부'로 축소됐다.
2010년에는 복지부의 청소년·가족 기능을 다시 가져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 지금까지 맥을 이어 왔다.
◇ 여야, 입장차만 확인하고 '공전'…국회 대응 나선 시민사회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 국회 의석 과반(172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여야가 이견 차이만을 확인한 채 논의에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구성된 '여야 3+3 정책협의체' 첫 회의에서는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는 핵심 쟁점과 관련해 연말까지 협의를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여가부가 여성 직능단체, 청소년계, 여성단체, 가족단체 등 유관 단체를 초청해 폐지 취지를 설명하는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 또한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전국 900여개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8일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전국행동)을 발족하고 국회 대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행동은 "국회의원들이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편안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 내·외부에서 적극적인 대응과 연대 활동을 해나가기를 계속해서 촉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