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6·25 민간인 학살 전모 규명할 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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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17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2기 진화위)는 전북지역 기독교인 104명을 6·25전쟁 시기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종교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로 인정했다. 가해자는 인민군·빨치산·좌익 세력이었다. 피해자는 일반 교인이 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집사(23명), 장로(15명), 목사·전도사(6명) 순이었다. 이 중엔 ‘국내 제1호 변호사’ 홍재기 변호사를 비롯해 제헌 국회의원 2명(백형남, 윤석구)도 포함돼 있다. 진화위는 종교인 희생자가 전국적으로 1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향후 종교별·지역별로 나눠 순차적으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한 종교인 학살이 정부 차원에서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쟁 발발 74년 만의 일로, 이처럼 늦은 것은 국민적 무관심을 잘 반영한다. 2005년 1기 진화위 출범 이래 전쟁 시기 한국 군경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조사 및 진상 규명에 주력한 반면, 적대 세력에 의한 테러·학살 등 반인도적 과거사에 관심을 덜 기울였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련 기초자료 조사조차 미진했다. 이번 진실 규명 발표는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팀이 2021년 말 진화위에 제출한 용역보고서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북한은 전쟁 기간 중 왜 이처럼 많은 기독교인을 대량학살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레닌의 공산주의 교리를 상기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진화위는 기독교인들이 1945년 광복 후 공산주의를 피해 월남하거나 우익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좌익 세력의 타깃이 됐다고 분석했다. 또, 예배당 사용을 두고 교회와 인민위원회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기독교 신자들이 미국 선교사와 가깝게 지내 ‘친미 세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적대 세력은 종교인들을 지주·자본가들처럼 공산혁명에 방해되는 악질 반동분자로 간주했기에 가차 없이 처단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기독교인 학살 규모가 진화위 추산처럼 1700여 명에 그칠지는 의문이다.

진화위의 향후 과제를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인 희생 사건은 개별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 사실 규명과 함께 역사적이며 전체적인 맥락에서 학살 피해의 원인과 성격(제노사이드 해당 여부 포함)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불교와 천주교 등 다른 종교인 박해도 마찬가지다. 또, 추정치에 구애되지 말고 조그만 단서가 발견되면 모두 추적·조사해야 한다.

둘째, 전쟁 시기 적대 세력의 지주를 포함한 양민 학살 총 규모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종교인 학살만 조사하고 진화위 활동을 종료해선 안 된다. 개략적인 조사·연구에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 셋째, 진화위는 국가에 대해 북한 정권의 사과 촉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 복구와 추모사업 지원 등 후속 조치, 평화·인권 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당연한 조치다.

다만, 시급하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간 과거사 진상 규명은 대한민국을 파괴·전복하기 위해 북한이 자행한 각종 대남 도발과 반인륜·반민족적 범죄행위에 소홀했었다. 이제는 균형 잡힌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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