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 감소로 쪼그라든 지방교부세·교부금을 보전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통합재정안정화기금(안정화기금)과 세계잉여금을 활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악화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 4곳 중 1곳은 안정화기금이나 세계잉여금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정화기금과 세계잉여금은 지자체 간 서로 주고받을 수도 없어 일부 지자체는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5일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243개 기초지자체 중 안정화기금 재원이 없는 곳은 19곳이다. 세계잉여금이 없는 곳은 38곳이다. 안정화기금과 세계잉여금 모두 없는 중복 4곳을 빼도 53개 지자체가 ‘비상 곳간’이 비어있는 셈이다. 심지어 지난해 결산 후 남은 돈보다 올해 예산편성액이 더 커 세계잉여금이 적자인 지자체도 24곳이나 됐다.
기재부는 올해 내국세가 55조원 덜 걷히면서 이에 연동되는 지방교부세·교부금도 23조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방교부세·교부금이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에 내려보내는 돈으로 내국세에 일정 비율을 곱해 그 금액이 정해진다.
정부는 대신 각 지자체가 그간 적립해온 안정화기금, 세계잉여금 등으로 교부세 감소분을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안정화기금은 지자체가 여유 재원이나 예치금을 모아놓은 일종의 ‘비상금’이다. 지자체는 조례에 따라 비상시에 안정화기금의 50~70%를 활용할 수 있다. 안정화기금은 지난 8월 기준 22조6964억원으로 이 중 13조6178억원(60% 기준)이 사용될 수 있다. 지자체의 세계잉여금 총액 역시 25조127억원 쌓여있어 6조1655억원을 사용할 수 있다. 언뜻 감소분보다 안정화기금, 세계잉여금이 더 많아 이를 충당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각 지자체의 안정화기금과 세계잉여금은 해당 지자체에서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안정화기금 여유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부산시가 사용할 수는 없다. 안정화기금 총액 자체는 지방교부세 감소분보다 크지만 실제 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지자체는 제한적인 셈이다. 결국 안정화기금이나 세계잉여금으로 교부세 감소분을 보전하기 어려운 지자체는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거나 기존 사업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방정부 부담만 가중시키는 중앙정부의 재정 건전성 정책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 의원은 “정부가 세수 결손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재정이 건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식회계나 마찬가지”라며 “중요한 것은 재정 건전성의 지표 관리가 아니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