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블라디보스토크 탈북민 모자 택시로 이송 중 러시아가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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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7.20. 오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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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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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탈출한 북한 외교관 가족을 우리 정부 측이 보호해왔으나, 러시아 정부 측이 다시 연행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핵심관계자는 20일 김금순(43) 씨와 박권주(15) 군이 주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관에서 탈출한 뒤 상황과 관련, “지난달 그들은 우리 측 시설에서 보호됐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을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 측 인사가 이들과 택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으로 가던 중, 러시아 경찰 단속에 잡혔다”며 “러시아 경찰이 이들을 연행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나 안가 등에서 이들을 보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하며 한국에 입국시키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총영사관에서 지난 6월 4일 도망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김금순, 박권주 모자의 실종전단. 세계일보 자료사진
◆의문1: 한국 망명하다 강제연행?
 
이들이 한국 정부 측 인사를 만나 보호를 받고 있었고 귀순 의사를 밝혔다면 정치적 망명 의사를 밝힌 국제법상 난민 지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은 난민을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 집단에의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공포 때문에 자국 국적 밖에 있는 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로 규정한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탈북민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조력 하에 입국하는 경우도 일부 있다. 이 경우 제3국은 난민을 본인 의사에 반해 국적국으로 추방해선 안 된다.
 
러시아 수사기관이 이들을 연행해 조사한 뒤 실종신고를 한 당사자인 북한총영사관 측에 신병을 넘겼는지, 러시아 측이 아직 데리고 있는지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확인해드릴 내용이 없다”며 “다만 원론적으로 말씀드리지만 탈북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북송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문2: 택시타고 공항으로?
 
우리 측 대응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블라디보스토크 사정을 잘 아는 한 러시아 전문가는 “해외의 대사관들이 해당 국가 영토로 간주되어 보호받는 것처럼, 우리 외교관이 탄 외교관 차량이었다면 그 차량 내부도 해당 국가 영토처럼 간주돼 외교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검문에 응하지 않아도 러시아 경찰은 어찌하지 못한다”며 “우리 측 관계자와 김씨, 박군이 택시를 탔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지금 우크라이나전쟁 중인 러시아는 자국민 중에서도 징집을 우려해 몰래 도망치는 사례를 통제하느라 모든 공항 주변을 매우 삼엄하게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다”며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간 게 사실이라면 너무나 아마추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비밀 작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탈북민 관련 업무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의 조합이 존재한다”며 “러시아와 외교라인을 통해서도 소통하지 않고 정말 은밀하게 진행해야하는 경우라면 공관 차량을 동원할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실종신고가 됐으니 출국금지도 이미 내려졌을 것”이라며 “공항에 가더라도 공항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교라인을 통한 소통이 있었다면 한·러가 같이 또 다른 국가를 경유하기로 하는 등의 여러가지 방식을 논의하고 협상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우리가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문3: 뺏긴 뒤엔 어떤 노력?
 
검문에서 김씨와 박군이 연행된 뒤에 우리 정부가 이들의 신병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김씨와 박군은 실종신고가 접수된 신분인 만큼, 연행한 뒤 일정한 조사를 거치는 시간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범죄 여부, 귀순 의사 등 다양한 확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일정한 시간이 소요됐을 가능성이 있다. 김씨와 박군의 총영사관 탈출 이후 상황이 정부 내에서도 극소수만 인지한 사항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세계일보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측에 이달 4일과 13일 두차례 서면 질의를 보냈다. 러시아 경찰의 연행이 사실인지를 비롯해 △김씨와 박군의 현 위치와 건강상태 △범죄혐의 등 조사 여부 △망명의사 확인 △연행의 정당성 △처리방침 등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러시아 대사관 측은 질의를 확인한 뒤 이날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 경찰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운영 중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도 이날까지 김씨와 박군을 찾았다는 소식을 올리지 않고 있다. 이 텔레그램 대화방은 우리 정부가 재난문자 형태로 실종자 이름과 인상착의 등을 발송하는 것과 유사하게 실종전단과 실종자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올리고, 실종자를 찾으면 ‘○○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메시지, 또는 ‘○○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결과도 공유한다. 하지만 이 텔레그램방에 이날까지 김씨와 박군을 찾았다는 소식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러시아 경찰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운영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의 평소 모습. 실종전단이 올라오고(위), 실종자를 찾은 경우 해결됐다는 표시로 찾았다는 문구를 더해 다시 실종전단을 올린다(아래). 김금순 씨와 박권주 군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는 가운데, 이들을 찾았다는 소식은 20일까지도 대화방에 공유되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항공기 탑승 후 회항설, 모스크바 감금설도 제기
 
한편 김씨와 박군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은 일부 매체에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형태의 보도로 나오고 있다. 다만 체포 주체와 방식, 김씨와 박군의 현 위치 등 세부 사항은 각기 다른 내용들이 퍼지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김씨와 박군이 지난달 7일 러시아 중부 지역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항공기를 탔으나 러시아 공안 당국이 이들을 체포해 북한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 외곽 예밀야노보 공항에서 정상 이륙한 항공기의 기수를 돌려 강제 회황시키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9년 북·러정상회담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을 당시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거리에 걸린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RFA는 또 ‘고려인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측이 최근 탈출한 주요 인물들에게 범죄 누명을 씌우는 방식으로 (러시아) 당국에 실종신고를 하면서 탈출자들은 현지 국가(러시아)와 국제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 거주 한인들과 관련 커뮤니티들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한 인사는 세계일보에 이들의 탈북 관련 뉴스는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교민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북한 식당 이야기도 하고, 어디가 맛집이라는 이야기도 나누곤 했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혹시나 오해를 받기라도 할까봐 북한 관련은 대화는 서로 절대로 꺼내지 않는 분위기”라며 “한러관계가 워낙 불안해 우리 걱정이 훨씬 크다보니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탈북 관련 뉴스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를 꺼낸 적도, 관련 소문이 돌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 ‘대동강 TV’에서 김씨와 박군이 지난달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멀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러시아 연방안보당국(FSB)에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의 현 위치 관련,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감금돼 있다며 “국경이 개방되면 항공편으로 최우선 송환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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