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사기꾼에게 8억을 뜯겼다…경찰도 “처음 보는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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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1.11. 오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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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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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등장하는 두 남자. 이들은 사기 피의자, 속칭 ‘사기꾼’ 들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기꾼들이 아닙니다. 다른 사기꾼을 등친 유별난 사기꾼들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같은 수법으로 8억 원을 갈취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통장협박’을 아십니까

이들의 수법은 이른바 ‘통장 협박’입니다. 통장협박이 뭐지? 대부분 생소하실 겁니다.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통장 협박’의 출발은 피싱 범죄입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속입니다. 송금을 요구하고, 보내온 돈을 가로챕니다.

보통의 피싱 범죄는 여기서 끝나지만, ‘통장 협박’은 더 나아갑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뜯어낸 돈을 챙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면부지인 타인의 계좌로 보내버립니다.

대체 왜? 여기에 노림수가 숨어 있습니다. 범죄 수익이 단 1원이라도 들어간 계좌는 즉시 ‘동결’됩니다. 원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지만, ‘통장 협박’은 이걸 악용합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 계좌로 20만 원을 이체한 거래 내역 캡처

예를 들겠습니다. 피싱으로 100만 원을 뜯어냈다고 가정합니다. 여기서 멈추면, 딱 100만 원만 벌겠죠.

통장 협박 일당은 그 100만 원을 10만 원씩 열 묶음으로 쪼갭니다. 그리고 10개의 계좌로 송금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아무 계좌로 보내지 않습니다. 검은 돈이 가득한 불법 계좌를 골라 보냅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주라면, 이용자들에게서 불법 판돈을 받을 계좌가 있을 겁니다. 그 계좌엔 수억, 혹은 수십억 원씩 들어있을 겁니다.

그런 거액이 단돈 10만 원 때문에 ‘동결’된다면, 도박 사이트 업주에게는 날벼락일 겁니다.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죠. 스스로가 범죄자니까.

통장 협박 일당은 이 약한 고리를 노립니다. 10만 원이라는 푼돈으로 막대한 검은 돈의 저수지를 ‘동결’해버리고, 그걸 풀어줄테니 막대한 합의금을 내라고 합니다. 검은 돈의 주인은 별 도리가 없습니다.

■ 검은 돈 저수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기상천외한 수법이죠. 아마 같은 사기꾼들도 전혀 몰랐을 겁니다. 실제로 속수무책 당했습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 350여 곳이 이번에 검거된 불법 협박 일당들에게 당했습니다. 사기꾼 350여 명이 사기꾼에게 감쪽같이 당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이 ‘동결’된 불법 계좌를 풀어주는 대가로 뜯어낸 합의금은 총 8억여 원 입니다. 붙잡은 경찰조차도 놀랐습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통장 협박 수법으로 다른 범죄자들을 등치는 건 처음 보는 수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일당들은 검은 돈이 가득한 불법 계좌를 어떻게 알았을 까요. 의외로 쉬웠습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애용하는 도박꾼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판돈을 무슨 은행, 무슨 계좌로 보냈냐고 물어서 확인했습니다.

■ 통장 협박에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을 등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수법을 개발하는 건 사기꾼들의 당연한 속성입니다. 새로운 수법이라고 마냥 놀라는 데서 그치면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선의의 피해를 예방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만에 하나, 통장 협박 일당이 애먼 내 계좌에 돈을 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난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는데, 그 순간 내 통장은 ‘동결’됩니다. 카드값 결제도 막히고, 자동 이체도 불가능해집니다. 단돈 1원도 인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일당의 타깃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합의금을 주고 풀어야 할까요. 그러면 안되겠죠. 하지만, 간편하게 동결을 푸는 뾰족한 패스트트랙도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내 통장에 돈을 넣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통장이 묶였다고 신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계좌는 범죄와 무관함을 입증하면 ‘무탈하게’ 내 통장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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