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기열 검사’와 검언유착 사건…숨은 진짜 책임자들 [좌영길의 법조 레프트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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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웅 1,2심 유무죄 판단 엇갈려…폭행은 인정
우발적 폭행이라 무죄…수사팀 명의 ‘한동훈 사과’ 요구
수사 지휘부는 ‘뎅기열 검사’ 사진 배포하고 뒤로 숨어
검언유착 수사 정당성 따지는 채널A 기자 사건은 무죄
이철 VIK대표, 채널A 취재 종료 후에야 ‘한동훈’ 이름 들어
1년 넘게 수사했지만 검사 유착 근거 제시하지 못한 수사팀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이 사진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2020년 7월, 코로나가 한창 유행이던 때였습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정진웅 부장검사가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는 장면입니다.

정진웅 검사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압수수색하러 나섰다가 전화를 빼앗는 과정에서 몸을 날려 덮쳤고,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중앙지검은 정진웅 부장검사의 누워있는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진웅 부장검사는 아무런 폭행을 당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과거 ‘뎅기열’ 논란이 일었던 가수 신정환 씨 사진에 빗대 ‘뎅진웅’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스꽝스러운 이 사진의 이면에는 당시 수사팀 지휘부의 무책임한 단면이 있습니다. 30일 대법원에서 정진웅 검사에 대한 무죄가 확정되자, ‘수사팀’ 명의로 나온 입장문 역시 그렇습니다.

1·2심 엇갈린 정진웅, 폭행 우발적이라 무죄…책임지지 않는 ‘뎅기열 검사’ 연출자들
정진웅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차장검사)[연합]


“부장검사가 적법한 공무수행 중 부당하게 기소되었다가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이 기소에 관여한 법무부, 검찰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정진웅 전 부장검사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른바 현재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인 정진웅 검사에 대한 무죄가 확정되자, 수사팀 명의론 나온 입장문일부 내용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정진웅 검사가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결론낸 것은 아닙니다.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독직폭행 혐의를 유죄로 볼 순 없다는 겁니다.

법적인 처벌과 별개로 사람을 폭행했다면 맞은 사람에게 ‘사과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가다 실수로 행인과 부딪치고, 상대가 넘어졌다면 최소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고, “고의가 아니었으니 당신이 사과하라”고 할 일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이 입장문은 기소된 당사자인 정진웅 차장검사가 작성한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입장문에선 ‘수사 정당성’을 언급하며 “정진웅 차장검사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시간”이라고 합니다. 다치지도 않은 정진웅 검사가 병상에 눕고, 이 장면을 촬영해 언론을 배포하게 한 사람들은 이번엔 정진웅 검사의 이름을 빌어 사과를 요구합니다. 압수수색 경험이 거의 없는 정진웅 검사 등을 떠밀고, 사고가 나자 당사자를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책임자들은 뒤에 숨었습니다. ‘뎅기열 검사’ 사진을 연출했을 당시 지휘부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정현 1차장검사였습니다. 이번 입장문 역시 익명으로, 정진웅 검사만 앞세워 수사 정당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기자 만나지 못한 이철은 협박을 당했나… 취재 중단 후에야 ‘한동훈’ 이름 들어
[연합]


정진웅 차장검사의 독직폭행 혐의는 MBC가 의혹을 제기한 검언유착 의혹 본류가 아닙니다. 이 사안의 핵심은 과연 기사 내용대로 검사가 기자를 시켜 수감자인 사기범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해 유시민 씨가 신라젠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꾸며냈는지 여부입니다. 정진웅 검사가 압수수색을 할 때 물리력을 행사한 게 처벌대상이냐가 아닙니다.

하지만 막상 채널A사건 이동재 전 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동재 기자는 이철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유시민 씨가 연루된 정황이 있는지를 물었고, 막상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습니다. 1조원대 사기범이, 기자가 보낸 편지 몇 통에 겁을 집어먹고 있지도 않은 범죄사실을 털어놓을 뻔 했다는 게 강요미수 혐의의 얼개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보낸 편지에 겁을 먹었다’는 이철은 채널A가 취재를 중단한 시점 이후에서야 자신의 변호인으로부터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다음은 2020년 10월 채널A기자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철 대표의 진술 일부입니다.

2020년 10월 이철의 법정 진술 핵심 내용 요약

1.이동재 기자가 수사 예측을 했나 : 못함

변호인 : (이동재 기자가) 소환 예상했다든지, B사와 L사(밸류인베스트 관계사) 수사 관련해 맞힌 적 있나?

이철 : 서신 왔다갔다 했다. 더 연락이 추가로 왔다면 그런 것도 맞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꼈다.

2.이철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유시민 정보를 추궁당했나 : 아님

변호인 : 당시 밸류 대표로서 투자금을 조세피난처로 송금해서 은닉하는 방법으로 범죄수익 은닉법 위반으로 조사 받았는데.

이철: 맞다.

변호인 :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 받은 적 있나. 정관계 인사에게 돈을 건넸냐는 내용.

이철 : 직접적인 질문을 받은 적은 없다.

3. 이철은 언제 채널A가 말하는 검사가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생각했나 : 채널A 취재중단 이후

변호인 : 3월25일에서야 비로소 처음 한동훈 이름 듣게 됐죠?

이철 : 네 그 때 맞다. (※3월25일은 이미 채널A에서 취재중단한 이후 시점임)



여기서 검·언유착의 ‘검’이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조원대 사기범 이철은 수사 과정에서 유시민 씨 관련 정보를 추궁당하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채널A 기자가 특별히 수사 상황을 알고 있다는 단서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채널A 기자가 지칭하는 사람이 한동훈 검사라는 것 역시 한참 이후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철 대표는 어떤 점을 근거로 막연한 ‘검찰 관계자’가 자신을 협박한다고 여겼을까요.

만약 한동훈 검사장이 이철을 압박해 유시민 씨에 관한 진술을 받아내려 했다면, 기자를 통하는 것보다 다른 검사들을 동원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을 겁니다. 당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수감자인 이철을 기자가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실제 채널A 이동재 기자는 이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검사 빠진 ‘검언유착’…기자는 무죄, 한동훈 검사장은 기소 못해
채널A사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전 고검장 [연합]


앞서 본 것처럼 이 사안에서 수사팀이 말한 ‘수사 정당성’을 따지려면, 압수수색 몸싸움이 아니라 검언유착 사건 본체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물론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수사를 부당한 것으로 비약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수사팀에서 꺼낸 논리대로라면, 자신들이 직접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왔다면 역설적이게도 검언유착 수사가 부당하다는 얘기를 스스로 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수사할 시간이 적었던 것도 아닙니다. MBC에서 의혹을 제기한 이후 수사팀은 여러번 교체됐고, 1년 넘게 이 사건을 이어갔습니다. 만약 검사가 유착한 의혹이 사실이라거나 관련 증거가 있다면 수사팀은 한동훈 검사장을 기소하고 공모관계를 공소장에 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2020년 3월 처음 검언유착 의혹을 제기했던 MBC는 후속으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신라젠에 65억 투자했다는 취지의’ 의혹도 보도했지만, 아직까지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사와 언론이 유착해 유시민 이사장의 범죄 연루 진술을 받아내려 했다’는 의혹은 어디서 입증이 되는 것일까요.

압수수색에 나섰던 부장검사를 병상에 눕혀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누군가는, 이번에도 정진웅 검사의 무죄 선고 결과를 놓고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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