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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4명의 제자를 모두 프로에 입단시킨 원곡고 김동열 감독. 강소휘, 이한비, 장혜진이 모두 1라운드에 지명됐고 김유주는 수련 선수로 뽑혔다.(사진=이영미)>.
여자 프로배구 2015-2016시즌 신인 드래프트는 원곡고등학교로 시작해서 원곡고등학교로 끝났다. 여고생 배구선수 32명이 참가한 드래프트는 GS칼텍스가 전체 1순위로 레프트 공격수 강소휘를 뽑은 것을 시작으로 1라운드에서만 원곡고 출신 3명의 선수가 지명됐고, 제일 마지막으로 호명된 IBK 기업은행의 수련선수 김유주도 원곡고 출신이었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 나선 원곡고 배구부 선수들은 모두 4명. 강소휘, 이한비(레프트, 1라운드 3순위로 흥국생명 지명), 장혜진(센터, 1라운드 5순위로 한국도로공사 지명)과 함께 리베로 김유주가 포함됐다. 4명의 선수가 ‘입사 전쟁’에 나섰고 모두가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신인 드래프트에 내보낸 4명의 선수에게 모두 프로 유니폼을 입힌 원곡고 배구부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배구부는 2013년 7월 창단했고, 그 해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더니 지난해에는 전국체전 준우승에 올랐고, 올해 창단 2년 만에 2015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그 중심에는 김동열 감독이 존재한다. 김연경, 황연주의 스승이기도 한 김 감독은 원곡중학교에서 20여 년간 배구부를 이끌다 원곡고 배구부를 창단하는데 일조했다.
# 김동열 감독의 ‘히스토리’ 부부 감독-코치
김동열 감독은 경북체고, 전북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입단했다. 당시 함께 뛰었던 선수들로는 선배 신치용 삼성화재 블루팡스 단장, 동기 차해원 GS칼텍스 수석 코치, 공정배 한국전력 단장 등이 있다. 한국전력에서 1년을 뛰었던 김 감독은 군 입대를 자원했고, 제대 후에는 태광산업 배구단(현 흥국생명)에서 코치로 3년간 지도자 생활을 한다. 이후 교직 발령을 받고, 1988년 9월 전북 진안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1년 만에 경기도 부천북중학교로 전근, 이후 원곡중학교 배구부 창단과 함께 1993년부터 원곡중 체육교사 겸 배구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태광산업에서 코치로 있을 때 지금은 경기위원장인 김형실 감독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배운 지도법을 응용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사자격증이 있다 보니 선수 생활을 일찍 접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아마추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창단팀 감독으로, 학생들의 체육 교사로 바쁘게 살았던 김 감독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들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 수업하고, 오후에는 선수들을 가르치며 공을 때리려다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고민 끝에 교육청에다 전임 지도자 한 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전임 지도자 자리가 생기면서부터 나를 도와줄 코치를 물색했다. 그때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배구를 가르치고 있는 아내가 떠올랐다. ‘모험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아내를 설득했다. 대한민국에서 부부가 감독-코치하는 사례가 없었고, 우리 부부가 그 모범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된 설득에 마지못해 아내도 허락을 했고, 그렇게 해서 원곡중 배구부 김동열 감독과 홍성령 코치 체제가 구축이 됐다. 학교에선 호칭이 ‘김 감독’ ‘홍 코치’였다. 그런데 집에서도 감독, 코치로 부르게 되더라. 어느 순간부터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김 감독이 아내를 코치로 데려온 것은 원곡중 배구부로선 ‘신의 한 수’나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무섭고 냉정하게 지도해나갈 때, 아내 홍 코치는 사춘기 여학생들의 엄마로, 언니로, 코치로 다가서며 선수들을 살갑게 안아줬다. 무엇보다 홍 코치는 학부모들과도 두터운 신뢰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그래서인지 원곡중 배구부는 김동열 감독-홍성령 코치 체제 이후 그해 무등기 대회에서 2위에 오르며 첫 입상에 성공했고, 1996년 전국소년체육대회 3위, 무등기 대회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학부모들이 우리 부부를 믿어주지 않았으면 오랫동안 그 체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부가 다 해 먹는다’고 뒤에서 이상한 말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작 우리 학부형들은 모두 나와 아내를 신뢰했다. 원곡중 배구부가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올린 데에는 나보단 아내의 희생이 절대적이었다. 아내는 코치이면서 선수들의 식사를 담당했고, 선수들의 상담을 도맡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선수들이 내는 운영비를 임의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난 개의치 않았다. 그걸 떼어 먹는다고 해도 100만 원 가량 되는데, 그 100만 원 더 벌려고 부식비를 빼서 쓰겠나. 내가 아닌데, 아내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 있겠나. 우린 훈련 잘 시키고, 잘 먹이고, 제대로 성장시켜 좋은 학교에 보내면 그만이었다.”
가끔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시합을 위해 지방의 모텔에 투숙하면 모텔 주인이 한 방을 쓰는 감독과 코치를 이상한 시선으로 봤다. 분명 선수들과 함께 온 감독, 코치인데 두 사람이 한 방을 쓴다고 하니 이상할 수밖에. 그래서 그 후론 방을 빌릴 때 마다 ‘우린 부부 감독 코치입니다’라고 먼저 알려드렸다(웃음).”

<2010-2011 시즌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흥국생명을 꺾었던 현대건설. 당시 김수지(왼쪽), 김재영 자매가 한 팀에서 뛰었다.(사진=김동열 감독 제공)>

<김수지(왼쪽)는 흥국생명으로 이적했고, 김재영은 은퇴 후 호주에서 유학 중이다. 김동열 감독의 아내 홍성령 코치는 원곡중 코치에서 물러나 가정주부로 돌아갔다. 배구 DNA로 똘똘 뭉친 배구 가족이다.(사진=김동열 감독 제공)>
# 김연경, 황연주, 잊지 못할 제자들
김동열 감독한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배구 DNA의 힘은 무시 못 한다. 딸들이 모두 배구선수로 활약했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딸 김수지는 현대건설에서 센터로 활약하다 흥국생명으로 이적했고, 현 대표팀에서도 센터를 맡고 있다. 김연경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 안산서초-원곡중-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한솥밥을 먹었다. 둘째 김재영은 현대건설에서 언니와 함께 뛰다가 2011년 은퇴 후 현재 호주에서 유학 중이다.
“연경이가 원곡중에서 뛸 때 내 딸들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다. 서로 가족처럼 붙어 지냈다. 당시만 해도 연경이 키가 큰 편이 아니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 쑥쑥 크더라. 우리 딸들이 마음 고생이 심했다. 아빠 엄마가 감독 코치이다 보니 혼 날 일이 생기면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이 혼날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도 우리가 왜 그러는지 잘 알기 때문에 참고 견뎌냈다. 그래도 마음속으론 많이 미안했다. 딸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듯해서.”
김동열 감독이 배출한 제자들은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가 현대건설 황연주와 터키에서 뛰고 있는 김연경이다.
“연주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연주를 소개해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중1 학생의 키가 178cm가 넘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만나보니 실제 키는 173cm였다. 왼손잡이라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당시 연주는 배구를 접해보지 못한 ‘생짜배기’였다. 그런 애를 데리고 와서 기본부터 가르쳤다. 내가 선수들을 지도하면 아내가 따로 연주를 전담해서 배구선수로 만들었다. 연주는 마치 스폰지처럼 가르치는 걸 제대로 받아들였고, 코트에 나서면 블로킹부터 곧잘 해냈다. 연주가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프로에 갈 때 계약금을 받고 갈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이고, 배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김연경을 거론하는 부분에서 김 감독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연경이는 중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급성장한 선수이다. 중학교 때는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쳤다. 어차피 개인기는 고교 진학 후에 더 채워 넣을 수 있기에 키가 작은 중학교에선 기본기만 잘 가르쳐도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연경이의 장점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키도 작고, 배구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대회를 나가거나 연습할 때 무조건 자기를 뛰게 해달라고 졸랐다. 끊임없이 ‘저 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 아이였다. 그 모습이 예뻤다(웃음). 연경이가 세계적인 배구 선수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이 따로 없다. 내가 고마울 정도이다. 가르친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내가 연경이의 스승으로 인정받아서 감사하다.”

<원곡고 배구단 선수들. 사진 왼쪽은 전임 지도자 조완기 코치이다.(사진=김동열 감독 제공)>
# 드래프트에 나간 4명 모두 프로 입단
원곡중학교에서 청춘을 바친 김 감독은 자신이 키운 제자들이 졸업 후 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는 게 안타까웠다. 마침 안산시에서 원곡중 배구부가 우승은 물론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등학교 배구부 창단을 지원하기로 했다. 김 감독은 다른 학교보다 원곡고등학교에서 배구부를 만든다면 원곡중과 연계성이 있어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안산시에서 이걸 받아들여 2013년에 원곡고 배구부가 창단되었다.
“창단을 하면 선수들이 있어야 하는데 원곡중 졸업생들은 이미 다른 학교로 입학한 상태라 선수들을 모으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이번에 신인 드래프트에 나갔던 강소휘(1라운드 1순위), 김유주(기업은행 신고선수) 부모님이 날 믿고 배구팀이 창단되는 걸 기다리겠다며 원곡중에서 원곡고로 진학했고, 훈련은 원곡중에서 하고 있었다. 소휘 같은 경우에는 다른 학교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였다.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과시하는 선수가 나랑 배구하겠다고 남아 있는 모습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장혜진(1라운드 5순위)은 부모님이 먼저 전화를 걸어선 ‘우리 애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던 케이스이다. 그렇지 않아도 창단팀 선수 수급에 애를 먹고 있던 터라 그 전화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청소년대표까지 했던 이한비(1라운드 3순위)는 후배의 딸이었다. 딸 둘을 나한테 보냈고, 언니는 대구시청에 입단했고, 한비는 이번 태국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대회 MVP를 차지했다. 솔직히 내가 한 건 선수들을 모으는 것이었고, 지도는 전임 지도자인 조완기 코치가 다 맡아 했다. 난 조 코치의 지도력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다.”
IBK 기업은행에 수련선수로 입단한 김유주에 대해선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유주는 1학년 때 사춘기가 와서 운동을 포기하겠다고 해서 부모랑 나, 유주, 서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기술 배워서 돈 벌겠다는 얘기에 5,6개월 정도 운동을 쉬게 했다. 그렇게 쉬다 보니 다시 배구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키가 작아서 리베로를 전담시켰는데, 한참 성장할 시기에 6개월가량을 놓친 시간들이 결국 드래프트 마지막 까지 유주 이름이 호명되지 않을까봐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소휘, 한비, 혜진이 모두 1라운드에 지명됐는데 유주만 4라운드까지 거론되지 않았다. 유주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유망한 선수이다. 분명 프로에 들어가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선수인데, 프로 유니폼을 입지 못한다면 정말 아까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IBK 이정철 감독님이 수련선수로 유주를 받아주신 거다. 다른 선수들보다 유주 이름이 호명됐을 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뻤다.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했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일찌감치 1순위 후보로 꼽혔던 강소휘. 배구팬들 사이에선 '제2의 김연경'으로 통한다. 강소휘는 GS칼텍스 입단 소감으로 "김연경 선배를 닮고 싶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강소휘는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의 선수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수원파장초등학교에 다니던 강소휘가 원곡중학교에 오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당시 타 지역에서 타 지역의 선수들 데려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안산서초등학교 선수가 원곡중으로 가지 않고, 수원에 있는 중학교로 옮겨가는 일이 발생했다. 수원이 우리 선수를 데려갔으니까 나도 수원에 있는 선수를 데려오겠다고 했고, 그때 손을 잡은 게 강소휘였다. 지켜야 할 룰을 안 지킨 건 수원이 먼저였기 때문에 나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런데 소휘가 이토록 ‘대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선수들과 헤어지는 시간을 맞이했다. 드래프트에 지명되자마자 선수들은 원곡고가 아닌 소속팀에 들어가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기쁘지만, 그래도 약간은 서운하고 허전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도 대학 입시나 마찬가지인데 좋은 팀으로 지명돼 갔으니 축하를 해주는 게 맞다. 보낼 사람은 보내고, 난 남아 있는 선수들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잘 키워서 언니들처럼 좋은 팀에 ‘시집’ 보내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시집’간 언니들은 원곡고 배구부에 지원금을 선물로 안겼다. 보통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이 4000~5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면 프로팀은 계약 연봉의 200%를 1라운드 지명 선수들이 나온 학교 지원금으로 내놓는다. 원곡고 배구부는 학교 예산도 없고, 안산시의 지원도 미미한 수준이라 예비 졸업생들이 만들어 놓은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 지원금으로 프로에 간 선수들이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답을 하고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
신인 드래프트를 마친 김 감독은 오는 10월 16일부터 열리는 전국체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전국체전에는 프로에 지명된 4명의 선수들이 원곡고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경기에 나선다. 김 감독은 ‘시집’ 보내야 하는 제자들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고 있었다.

<오는 10월 전국체전에서 프로에 지명된 4명의 제자들과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김동열 감독. 제자를 프로에 보내는 심정이 홀가분하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이영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