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77. 그대의 몸과 마음·영혼의 밭을 경작하라, 쟁기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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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자세’를 할 때는 먼저 등을 대고 누워 두 다리를 나란히 모은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발을 들어 올리면서 머리 너머로 넘겨 발끝을 바닥에 닿게 한다. 팔을 굽혀 등을 받쳐도 좋고, 손깍지를 낀 채 바닥에 밀착해 정지 동작을 취할 수도 있다. 시연 황은주.


쟁기는 소나 말, 기계 등의 힘을 이용해 논밭을 가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로, 땅을 갈아엎어 잡초를 제거하고 토양이 숨 쉬기 편하게 다공성(多孔性)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대부분 트랙터를 동력으로 이용한다.

땅도 숨을 쉰다고 한다. 김을 맨다는 것은 땅이 숨을 쉬게 하는 것이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땅을 부드럽게 해주는 행위이다. 이처럼 굳은 땅에 공기와 빛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선행자(先行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쟁기이다.

사용한 땅은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사용하던 땅에 씨앗을 뿌리면 꽉 찬 열매를 수확하기 어렵다. 알찬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매년 쟁기로 땅을 갈아엎어 싱싱한 흙을 만들어야 한다. 소는 앞에서 끌고 농부는 뒤에서 밀며 쇠붙이로 된 쟁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는 원리, 땅과 농부에게 희망을 주는 기구가 곧 쟁기이다. 조상들의 번뜩이는 지혜의 산물이며 보물 같은 존재다.

쟁기가 지나간 땅은 지렁이가 생장하고 온갖 미생물이 살아 넘치는 토양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자연과 더불어 상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쟁기는 한 마리 두 마리 소나 말이 끌게 마련이지만, 소나 말이 없을 때는 부득이 사람이 끌기도 하였다.

가축을 사용한 쟁기의 사용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에서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나타난다. 쇠로 된 보습을 사용하기 전에는 나무나 돌을 다듬어서 썼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 무렵의 황해도 봉산 지탑리의 신석기 유적에서 긴 타원형의 돌보습이 발견되었다.

쟁기라는 말은 쇠로 만든 연장이나 무기를 뜻하는 ‘잠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6세기 이후 잠개는 점차 ‘잠기’로 변화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장기’로 바뀌며 그 의미도 농기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장기가 ‘쟁기’로 바뀌기 시작해 이것이 표준어로 굳어졌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22대 지증왕이 논밭을 갈 때 소에 쟁기를 매어 끌게 하는 우경(牛耕)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용도와 관련하여 쟁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도의 2대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중의 하나인 라마야나의 저자는 발미키(valmiki)이다. 라마야나는 비슈누 신의 아바타인 라마 왕세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라마야나에서 쟁기는 풍요의 여신 락쉬미의 아바타로, 시타 탄생 부분에 등장한다.

먼 옛날 고대 인도 북부에 아주 현명한 자나카 왕이 살고 있었다. 비데하 왕국의 자나카 왕은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 카르마 요가 수행자였다고도 한다. 어느 날 자나카 왕이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데 쟁기 날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리는 게 아닌가. 땅을 파보니 커다란 알이 나왔는데, 그 알에는 작은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왕은 그를 자신의 딸로 삼았고, 고랑이라는 뜻의 ‘시타’라 이름 지었다. 흙에서 태어난 시타는 훗날 라마를 만나게 되어, 이 두 사람은 ‘라마야나’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

중국에서 곡식 문화는 국가의 존속에 매우 중요했으며 황제는 특별히 보관해 두었던 호화로운 장식용 쟁기로 매년 봄 신성한 밭을 쟁기질하는 의식을 백성들에게 시범 보였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쟁기질과 상징적으로 관계되어 있어 이따금 여성은 실제의 쟁기질이나 쟁기질하는 시늉에 의하여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코카서스의 프샤우와 츄수르 지방에서는 가뭄이 들 때 ‘비를 쟁기질’하는 의례를 지낸다. 처녀들이 쟁기에 몸을 묶고 그것을 강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허리까지 물에 잠겨 걷는다. 인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통이 남아 있다.

예수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고 세상일에 연연하는 것을 지적할 때 쟁기가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1)

내 손의 쟁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신의 뜻과 나라를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신을 위한 쟁기질이라 하였다.

쟁기질은 씨를 뿌리고 결실을 거두기 위한 지혜의 수단으로도 곧잘 묘사된다.

“믿음은 씨앗이다. 선행은 그 씨앗이 열매 맺게 만드는 바이고, 지혜와 인내심은 쟁기이다.”

“마음은 고삐이고 근면성은 참을성 강한 황소이다.”

“밭은 다르마다. 잡초는 세속적인 것에 매달리는 마음이다. 쟁기는 불후의 열매를 씨 뿌리고 거두기 위한 지혜의 수단이다.” 붓다의 말씀이다.

‘할라 아사나(hala asana)’를 ‘쟁기 자세’라 칭한다. 등을 대고 누워 두 다리를 나란히 모은다. 양팔은 몸통 옆에 붙인 채 양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양 발바닥은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리면서, 동시에 머리 너머로 넘겨서 발끝을 바닥에 닿게 한다. 양손은 그대로 바닥을 짚거나 팔을 굽혀 등을 받쳐 세워도 괜찮고, 손깍지를 낀 채 바닥에 밀착하며 양발을 뒤로 넘긴 채 정지 동작을 취할 수도 있다. 어깨를 조금 안으로 모아서 어깨와 팔이 바닥에 닿게 함으로써 목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만약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목을 젖히지 말고 양손으로 허리를 받치거나 의자 또는 요가 블록 등의 도구를 사용해 다리를 받쳐 놓아도 된다. 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목덜미를 길게 늘인 상태에서 어깨가 매트에 닿게 한 채 시선은 배꼽을 향한다.

할라 아사나 후에는 상응된 동작인 마시야 아사나(물고기 자세)를 꼭 함께 해주어 한쪽으로 쏠렸던 목의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발끝을 당겨서 다리 뒤쪽의 햄스트링 부분이 충분히 자극될 수 있게 한다. 목 질환이 있거나 임산부의 경우 자세를 느슨하게 하며 발가락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한다. 생리 중일 때는 자제하는 게 좋다. 이 자세 실행 시 가능한 한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자칫하면 목뼈에 체중이 실려 목뼈에 무리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형 동작으로 두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긴 후 좌나 우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이를 ‘파르스바 할라 아사나’라고 한다. 가능한 한 다리가 머리와 일직선이 될 때까지 최대한 이동시켜 본다. 다리가 움직일 때 가슴과 몸통은 그대로 유지한 채 행한다. 이 자세는 더욱 오장육부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며, 특히 쾌식·쾌변·쾌면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자세의 효용성은 의외로 많다. 열거하자면 첫 번째로는 소화 기능을 개선하고 식욕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가스가 차서 답답한 상태라면 가스를 배출할 수 있다.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도록 돕기 때문에 복부 팽만감 완화 및 위장 기능 향상에 효과적이다.

두 번째로는 뱃살을 포함해 체지방 제거 및 복부 근육 강화에도 효과적이다.

세 번째는 혈액순환을 촉진해서 하체 부종이나 하체 비만에 효과적이다.

네 번째로는 어깨와 척추를 뻗는 이 자세는 척추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다섯 번째로 목 뒤쪽을 마사지하는 효과가 있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부교감신경이 자극되면 혈압이 낮아지고 심박 수가 줄어들어 정신적 육체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마지막으로 림프와 신체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하지부종과 통증을 줄여 준다. 특히 갑상선을 자극하여 갑상선 호르몬 조절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목 아랫부분 양쪽에 있는 갑상선은 크기는 작지만 아주 중요한 내분비 기관이다. 갑상선은 호르몬을 내보내 우리 온몸에 퍼져 있는 당·지방·단백질 같은 여러 물질대사가 원활하도록 돕는다. 성장기에는 몸이 잘 발달하도록 해주고, 성장 후에는 몸을 잘 유지하도록 해준다.

반면 이 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심장박동이 빨라져 숨이 차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또 몸에 열이 나고 몸무게가 줄어든다. 또 너무 작게 나오면 쉽게 피곤해지고, 마음이 우울해지며 몸이 차가워져서 몸무게가 늘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갑상선 호르몬은 많아서도 적어서도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환정보뇌(還精補腦)’의 양생법 효과도 가져다주는 자세이다. 환정보뇌를 하면 몸의 활력이 충만해지고 마음이 평화스러운 상태로 유지된다. 화(火)가 치밀 때 유용하다. 뇌경색과 심장마비를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 하타 요가에서는 쟁기 자세를 심장 마사지 자세라고도 부른다. 심장에 쌓인 긴장을 풀어주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쟁기 자세는 내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아상(아함까라)과 아집과 명예욕 등을 조절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요가 고수 사치타난다 요기는 말하고 있다.

또한 후뇌를 각성시키는 자세이기도 한데 보통 전뇌만 발달하고 후뇌가 각성되지 못하면 뒤를 보지 못하기 쉽단다. 뒤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처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 주변에 대한 배려심 등을 일컫는데 의식이 앞으로만 쏠려 있게 되면 이런 것들을 놓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이중인격, 철면피, 위선자, 후안무치한 성격의 특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역시 고수들의 말이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배꼽 아래 있는 두 번째 차크라를 밭 전(田) 자를 써서 단전(丹田)이라고 한다. 우리 몸이 땅에서 나서 땅에서 자라고 사후엔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몸을 밭으로 비유한 게 아닐까? 쟁기 자세가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자세는 비장 기능을 억제할 수 있어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과도하게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게 좋다. 제자리로 두 다리를 돌려놓을 때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돌아온다. 자칫 목과 어깨, 허리 부분에 무리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농부가 땅을 갈아엎어 토양에 다공성을 유지시키는 것처럼, 요가는 정신의 개방성과 수용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그 토대를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요가 수행자는 생생하게 날이 선 쟁기와 같이 마음의 분별력을 바로 세워 자신의 삶을 비옥하게 만들어 갈 일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신외무물(身外無物)’이란 말이 있다. 육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육체를 ‘보이는 마음’이라고 어느 석학은 정의하고 있다.

육체를 먼저 갈고닦아야 정신도 단련된다는 말이다. 하타요가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수많은 요가 체위 중의 하나인 이 쟁기 자세로 먼저 육체의 밭부터 건강하게 갈아 보는 거다.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de)는 그의 명저 요가에서 요가의 목표를 ‘불멸(immortality)’과 ‘자유(freedom)’로 정의한 바 있다. 불멸까지는 아니어도 100세 인생 시대가 아니던가. 100세까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몸과 영혼을 꿈꾸어 봄직도 하다.

쟁기 자세는 카르마 요가의 정신을 상기시킨다. 보상에 대한 기대와 집착이 강한 사람은 그 일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그것이 역으로 혐오나 원망으로 바뀔 수가 있다. 그러나 일 그 자체를 즐기고, 일 그 자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충족감(self-fulfilment)’이 더 커지고 오롯이 그가 행한 행동이나 일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수적으로 행복감도 더 커지게 된다.

일 그 자체 속에서 신(神)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요가 장르별 분류상 ‘카르마 요가(karma yoga, 행위 요가, 생활 요가)’라 일컫는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의 실천이며,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것이 바로 카르마 요가이다.

농기구인 쟁기가 그러하듯 쟁기 자세 또한 일과 노동을 상징한다.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일과 그런 노동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농부와 같아야 한다. 농부는 미래의 수확을 생각하여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라 씨를 잘 뿌린 것에 행복해한다.” 요가의 대가 B.K.S 아이엥가의 말을 되새겨 본다.

이처럼 쟁기 자세는 ‘수행자는 끊임없이 밭(심전·心田)을 갈고닦고 고르고 솎아내는 노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영적으로 성숙되고 정화될 수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마인드 포스(mind force)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쟁기질이 필요하다. 마음은 일종의 밭, 심전(心田)이다. 쟁기질하지 않는 밭은 순식간에 황폐하게 변해버리고, 이런 땅에는 씨앗을 뿌려도 많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땅이 부드럽고 공기가 통하게 하기 위해 매년 쟁기질을 해야 하듯이 마음의 밭을 주기적으로 쟁기질하여 개방성과 수용성이 유지되게 해야 한다.” 스와미 시바난다 라마의 말이다.

쟁기는 우리의 생명을 말한다. 우리 손에는 모두 쟁기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쟁기를 손에 쥔 자는 앞만 보고 나아가야 논밭을 똑바로 갈 수 있다. 뒤를 돌아보거나 좌우로 치우치면 밭고랑이 구불구불해진다. 손에 쟁기를 잡은 사람은 목표가 뚜렷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쟁기를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떤 의도로, 어떻게 쓰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명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육체의 밭, 나의 영혼의 밭을 잘 갈고 있는지?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경작하고 있는지? 내가 부숴야 할 딱딱한 흙덩어리는 무엇인지? 돌이켜 보는 깊은 사유와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쟁기질을 통해 대지는 숨을 쉬듯, 우리는 몸과 마음의 전답을 고르게 갈고닦아서 인간의 본성(本性)이, 아트만(atman·참된 나)이 새록새록 숨 쉬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이 사회에 쟁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더욱 넘쳐나기를 염원해 본다.

[할라 아사나/ 최진태]

굳은 땅 갈아 엎어 환골탈태 시켜주오/공기와 빛 들여주고 영양분도 재보충을/숨쉬기 한결 편안함 발 뻗기도 그저그만

우마는 앞서 끌고 농부는 뒤서 민다/좌고우면 하지 말고 오로지 앞으로만/목청껏 노래한다네 오곡백과 풍년가를

생명을 불어 넣고 희망 가득 뿌리는군/지나간 자취마다 꿈틀꿈틀 생기 만발/이 세상 그대와 같은 사람들로 넘쳤으면

두손은 허리받쳐 양발은 머리 뒤로/쾌식 쾌변 물론이고 쾌면까지 인도 하네/어깨 척추 풀어주면서 갑상선도 원활하게

철면피 후안무치 이 세상 내가 최고/배려심도 바닥이네 끝이 없는 아상(我相) 아만(我慢)/후뇌를 각성시키는 쟁기 자세 답이 될까

배꼽밑 차크라를 단전(丹田)이라 한다지요/땅에 나서 땅에 자라 땅으로 돌아가니/우리몸 밭으로 비유 그 연유를 새길지다

각자 손에 쥐고 있는 쟁기는 우리 생명/명징한 의식 갖춰 제대로 된 사유 성찰/그래야만 심신의 밭도 곧게곧게 갈려지네

생생하게 날 세우고 곧게 선 쟁기처럼/우리 마음 분별력도 이처럼 바로 세워/각자의 삶 비옥하도록 부지런히 갈고 닦길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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