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대신 강아지 키워요”…그들은 왜 '딩펫족'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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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22. 오후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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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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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 남녀 출산율 감소…반려견·반려묘 수는 계속 증가 국내 가구 4분의 1이 키우는 셈
반려동물 시장 6조원까지 상승 전망…반면 육아용품 시장은 성장 멈춰
딩펫, 저출산고 무관 편견 버려야
대구 신천 둔치에서 한 시민이 애견용 유모차인 '개모차'를 끌며 산책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유모차를 탄 어린이가 지나간다. 매일DB


아이 아빠로 보이는 30대 남성이 유모차를 끌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저귀 가방을 든 여성이 함께 걷고 있다. 너무 단란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데 남성이 유모차 커버를 벗기고 들어 올린 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 아이 대신 강아지를 들어 올려 입을 맞추고 품에 꼭 끌어안는다. 여성은 기저귀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강아지 입을 살뜰히 닦는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소중히 안고 다루는 모습과 흡사하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남녀가 출산을 기피하면서 그 빈자리는 반려동물이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를 보면 2022년 가임 기간 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은 0.78%다. 2000년 1.48명에서 2010년 1.23명으로 줄어든 후 계속 감소세다. 반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해마다 늘어난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국내 반려견, 반려묘 수는 2021년 742만마리에서 2022년 798만마리로 증가했다. 국내 2370만가구 중 4분의 1이 반려견(19.0%)이나 반려묘(7.1%)를 키우는 셈이다.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량이 사상 처음으로 유아용 유모차를 넘어섰고 어린이날이 개린이날로 변모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매일DB


◆딩펫족? 혼펫족? '新가족의 탄생'

결혼 9년차 유시은(43) 씨 부부는 자녀 계획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삶에 부족함이 없는데 굳이 아이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 "아이 없는 외로움을 대체하기 위해 강아지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아이와 강아지를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어쨌든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과 돈에 비해서는 강아지가 월등히 적다. 그래서 조금 편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입양한 것 같다"

유 씨 부부가 딩펫족(아이 없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부부)을 선언한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일조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20년 장기 프로젝트 아닐까.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 20년이다. 비용도 1억 이상이 들거다. 비용과 시간 관점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교하면 딩팻족이 아무래도 자원이 덜 투입된다"

딩펫족은 자녀를 갖지 않고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는 부부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시간과 돈을 들이기보다는 차라리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부들도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출산을 미룬 2030세대들은 외로움을 반려동물로 달래는 경우도 많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가구 '혼펫족'을 자처한 김은지(38) 씨는 주변에도 자신과 같은 가족형태가 많다고 설명한다. "지인 중에 '결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다. 다들 여유가 없다 보니 비혼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또 나 같은 여자들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을 위해 열심히 스펙 쌓아놨는데 결혼·출산하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 된 거나 다름없으니 결혼을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은지 씨는 경제적 이유로 비혼을 택했지만 그에 따른 외로움이 문제였다. "자녀를 키우는 것에 비해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책임감과 비용 부담 등이 덜하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충족하지 못하는 욕구를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분석했다. "사람에게는 가정을 이루고 자신이 뭔가 돌봐줘야 한다는 욕구가 있지만 여건상 자녀를 낳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이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라며 "욕구는 채우되 경제적 부담이 비교적 낮은 반려동물 입양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작년 대구 엑스코에서 개막한 '제20회 대구 펫쇼' 를 찾은 반려견과 보호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 육아용품 시장 추월

육아(育兒)보다는 품이 덜 들어가는 육견(育犬)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대에도 꽤 많은 노동과 돈이 투입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가족으로 인해 반려동물 산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2조3332억원이던 반려동물 연관산업 규모는 해마다 두자릿수 안팎의 고성장을 이어가 2027년 6조55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건강식부터 미용실, 세탁소, 호텔, 병원, 보험, 생활용품까지 반려동물 전용 상품은 없는 분야가 없다.

딩펫족 3년차 김성재(37) 씨 부부는 반려동물 양육비가 아이 못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김 씨의 반려견 뭉치의 하루는 여느 유치원생과 다를 것이 없다. 뭉치는 유치원을 다니고, 해마다 생일파티도 한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수십개의 사료 중 영양성분에 맞는 것을 골라 먹고 있으며,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검진차 동물병원을 다니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가입해준 펫보험 때문에 노후 걱정(?)도 없다. 주변 가족들이 어린이날이나 생일이면 선물해 주는 여러 브랜드의 옷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2조3332억원이던 반려동물 연관산업 규모는 해마다 두자릿수 안팎의 고성장을 이어가 2027년 6조55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건강식부터 미용실, 세탁소, 호텔, 병원, 보험, 생활용품까지 반려동물 전용 상품이 없는 분야가 없다.


"부모 나름이겠지만, 우리는 뭉치를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서 조금 유난을 떠는 편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반려동물 산업이 성장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웃음). 그래도 주변에 보면 우리가 그렇게 유난은 아니더라. 강아지 키우면 이 정도씩은 다 해주는 추세인듯 하다" 반려동물이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펫 전용 TV나 프로그램도 있다. 거기에다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맘 카페' 못지 않은 반려동물 커뮤니티까지 활성화 됐다. 그리고 이런 트랜드에 맞춰 반려가구를 위한 복지 혜택을 늘이는 회사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반면 유아용품 시장은 성장을 멈췄다. 통계청 발표 국내 유아용품 시장(분유, 기저귀, 유아복, 유아가구 등)은 제조업 출하기준 2016년 2조4000억원에서 2019년 2조1000억원까지 낮아졌다. 통계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수입품과 유모차 등을 포함하면 국내 유아용품 시장은 코로나19(COVID-19) 발생 이후 4조원 선에 머물러 있다는게 업계의 추정이다. 유통업계 곳곳에 육아용품이 빠진 빈자리를 반려동물 용품이 채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 한 마트에는 기저귀를 팔던 코너가 반려동물 간식 코너로 바뀌기도 했다.

◆"애 대신 무슨 강아지냐" 비난 stop!

반려동물 산업과 유아용품 산업을 대조하는 분석들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를 함께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딩펫족은 "딩크족과 딩펫족이 연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 또한 그저 부부로서의 삶에 집중하기로 결정해서 딩크족의 삶이 되었고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지라 자연스럽게 강아지를 키우게 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려동물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여건이 안 돼서 딩크를 택한 가운데 반려동물을 키운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딩펫족에 따르면 강아지는 아이의 대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 12월 결혼식을 올린 최진영 씨도 "지금은 경제적 여건이나 직장 경력 단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지만, 여러 정책이나 조건들이 좋아진다면 아이를 가질 생각도 있다. 하지만 지금 키우는 강아지는 그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함께 지낼 것이다. 딩크족은 신념이고 딩펫족은 그저 문화 정도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이 없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부부에게는 응원 보다는 비난이 잇따른다. 저출산에 기여하지는 못할 망정 강아지나 끼고 도냐는 막말도 쏟아진다. 이에 대해 딩펫족과 혼펫족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없이 강아지와 살면 어떻고 결혼 안 하고 강아지랑 살면 또 어떤가요. 부정적 시선이 있는 것은 알지만 언젠가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으로 인정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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