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로 한복판 11년째 시위…‘기울어진 판결’ 기준 바로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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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해고 근로자가 서울 시내 도로 한가운데에서 11년째 집회를 하는데도 경찰과 구청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해고자 A 씨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빌딩 앞 왕복 9차로 도로 한가운데 노란색 빗금이 쳐진 ‘안전지대’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11년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A 씨는 매달 30일씩 집회 신고를 한 번에 해놓고 신고 기간이 끝나기 이틀 전 새 집회를 신고하는 방식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를 악용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야간에 화장실 등을 이용하기 위해 무단 횡단을 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A 씨와 집회 동참자들이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는 부르는 등 소음 피해를 일으켜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집회·시위는 ‘신고’ 대상이어서 A 씨의 집회는 합법인 데다 ‘안전지대’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 차량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저지할 수도 없다. 도로교통법 규정이 모호해 안전상 우려와 위험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막기도 힘들다.

A 씨 등이 시민의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상시 집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시위 자유 보장을 우선하는 법원의 ‘기울어진 판결’ 탓도 크다. 서울고등법원은 10일 퇴근 시간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도심 집회를 허용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경찰이 낸 항고를 기각했다. 경찰은 민주노총이 11·14일 서울 도심에서 퇴근 시간에 집회를 할 경우 심각한 교통 정체와 시민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교통 장애 초래를 단정할 수 없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댔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21조)이지만 시민의 평온한 일상과 통행권을 과도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의 행복추구권(10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35조) 등의 기본권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는 시위 세력에 지나치게 온정적인 판결 기준을 바로잡아 시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집회·시위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이를 위해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손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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