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교권추락, 날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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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성악가·부경대 겸임교수지난 7일 대전에서 또 한 분의 소중한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학부모의 민원에 수년간 시달리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먼저 선(先)’ ‘날 생(生)’으로 이뤄진 ‘선생’은 논어에서 유래된 ‘먼저 난 사람’이란 뜻이다. 맹자시대에 ‘존경받는 어른’의 뜻이 더해지고 제나라 관중의 업적을 기록한 관자(管子)에서 스승 또는 교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연장자에서 존경받는 어른으로 다시 스승의 의미로 변한 ‘선생’은 가르침을 내리는 존경받는 연장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교사의 훈육은 ‘정서적 학대행위 금지’를 근거로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 변해버렸고 소중하고 신성한 교사의 가르칠 권리는 무너져버렸다.

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교육명제이다. 힘든 입시에서 최저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고(상위 11%) 다시 임용이라는 힘든 시험을 통과한 교사는 최고들 중 최고이다. 그러나 끝없이 추락하는 교권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던 지역 거점 교육대학들의 등급은 물론 경쟁률마저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교대 자퇴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대입 정시에선 전국 교대의 약 80%가 사실상 미달됐다. 한국교원대(5 대 1) 이화여대(3.9 대 1)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경쟁률이 3 대 1 미만으로, 정시는 3곳까지 원서를 쓸 수 있기에 3 대 1 미만은 미달로 간주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교권추락으로 실질적 교사의 배출수단인 교육대학에서 예비교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자 수단을 가리키는 교육학 용어이다. 그러나 학부모의 악성민원과 갑질에 교육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의 아이폰을 보고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니 쓰지 말아 달라, 전화상담 교사의 밝은 목소리가 거슬린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아이 숙제로 인해 부부 싸움이 났다며 교사를 가정파괴범으로 몰아가고,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교사에게 학교에서 아이를 씻겨 달라고 하거나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를 혼냈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매일 저녁 교사에게 폭언을 퍼붓고,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복도에 세우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이유로 20건 이상의 민원과 아동 학대 신고를 넣으며, 교사가 편식하는 학생에게 음식을 권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받는 등 상식을 벗어나는 학부모의 갑질 사례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 교육법상 학생의 수업방해와 학부모의 갑질에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학부모 갑질방지법과 교권침해 내용 생활기록부 기재 법안이 조속히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학부모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내 아이는 소중하다. 당연하다. 코로나19로 가정에서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지고 비대면이라는 특이한 상황에 길들여진 2020년대의 한국 학부모는 자녀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하다. 그러나 그 소중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방해한다면…. 교사가 바라는 교권보장은 큰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가 일정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던 지난 4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망사건 피해 교사의 49재 추모식에 맞추어 전국의 많은 교사가 연가 병가 공가 등을 사용, 교권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하며 출근하지 않았다. 이날 수만 명의 교사는 벼랑 끝까지 몰린 교육현실 해결을 위해 한 마음으로 절박하게 외쳤다. 우리는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는 공교육이 멈추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눈도 못 마주치던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맘 편히 상담할 수 있는 한없이 자애로운 부모님 같은 분이셨다. 이 땅에 공교육이 우뚝 서길 기도한다. 추락하는 교권에 날개를 달아 힘차게 비상하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선생님의 얼굴에서 자긍심과 미소가 번져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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