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좌파 정치인의 아편,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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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이후 70년은 남북한 체제 대결 역사
대한민국 성과 인정 못하니 北·스탈린 칭송한 유럽 좌파처럼
친중·반일에 매진하고 정권 흔들기 괴담 재생산



정전(停戰) 협정 70주년이 다가온다. 1953년 7월 27일의 협정 이후 70년은 남북한 체제 경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전·현직 경제 부총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기념 국제회의가 열렸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대한민국을 가리킨다는 것이 이제는 전 세계에 자명하지만 한때 북한에 그런 수식어를 붙여준 경제학자도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인 저명한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1964년 북한을 방문하고 이듬해 좌파 비평지에 ‘1964년 한국, 경제 기적’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로빈슨은 북한을 “빈곤이 없는 국가” “전후 다른 경제권의 놀라운 성장도 북한의 성취에 비하면 빛을 잃는다”고 썼다. “만약 한국인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모두 북한을 택할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당시는 북한이 남한 경제력을 앞서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로빈슨은 1962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독자 노선 경제개발 7개년 계획, 그리고 “독재라기보다는 구세주에 가깝다”며 김일성 리더십에 놀랍도록 후한 평가를 내렸다. 북한이 발전하고 남한은 쇠퇴하면서 휴전선이라는 거짓의 장막이 찢어질 것이라며 남한의 사회주의 흡수 통일도 예측했다.

로빈슨의 장담과 달리, 경제개발계획을 통한 남북한 체제 대결은 북한의 처절한 실패로 귀결 났다. 하지만 1983년 사망 당시까지도 로빈슨은 판단 오류를 정정하지 않았다. 후기 케인스 학파로 분류되며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은 학자였지만 현실 인식에서는 어리석기 그지 없었다.

좌파 지식인의 자가당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차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소련을 바라보면서 유럽 지식인의 좌우 논쟁이 치열했다. 좌파 지식인이 우세하던 프랑스에서 6·25 전쟁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파병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지키느라 피 흘리는데, 실존주의로 유명한 스타 철학자 사르트르는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6·25 전쟁이 미 제국주의 도발로 인한 북침이라는 주장을 폈다.

프랑스 우파 사상가 레몽 아롱은 사르트르를 비롯해 전후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는 심하게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자의 억압이나 폭력에는 침묵하거나 두둔하는 실태를 보면서 1955년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던 칼 마르크스에 빗대, 좌파 지식인들에게 마르크스적 이데올로기는 아편처럼 보통 사람들보다 해방되기 더 어려운 세속 종교라는 비유다. 좌파는 불완전한 사회를 비난하면서 관념에 의해 형성되는데 문제는 좌파가 권력을 잡고 기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점이다.

유럽의 좌파 신화는 1990년을 전후해 동구권 몰락과 독일 통일, 소련 해체로 완전히 무너졌다. 1960년대 학생운동 세력으로 정치에 입문한 유럽 좌파 정치인들은 ‘제3의 길’을 제시하면서 좌파 정당의 노선을 수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수권 정당으로서 자격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도 좌파 정당이 스스로 개혁을 못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파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년 집권)에 대한 반감 덕에 좌파 올랑드 대통령(2012~2017년)이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지지율 4%의 무능한 정부로 끝났다. 결국 젊은 정치인 마크롱이 제3정당을 창당하면서 집권에 성공해 뒤늦게 프랑스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한국도 유럽처럼 선거를 통한 좌우 정당의 권력 교체가 정착됐다. 군사 정권에 반대하면서 반미·반정부를 외쳤던 80년대 386운동권의 논리적 시효는 스스로 집권당이 되면서 끝났다고 봐야 한다. 영국이나 독일의 ‘제3의 길’처럼 좌파 정당이 정책 노선을 수정하면서 시대에 맞게 변모했어야 하는데, 프랑스 좌파 정당처럼 그러질 못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손쉽게 집권에 성공하면서 개혁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집권해서도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해 끊임없이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철 지난 반일(反日) 프레임을 가동하면서 갈등과 불만을 부추기는 길을 택했다. 재집권에 실패한 뒤로는 광우병·천안함·사드 괴담의 바통을 이어받아 괴담 정치에 매달리며 늪으로 빠져든다. 레몽 아롱이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했던 것처럼, 일부 좌파 정치인과 그 지지 세력은 괴담이라는 아편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아롱은 “정직하면서 똑똑한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괴담 정치’에 매달리는 우리나라 좌파 정치인들은 이 중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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