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로화 가치는 전년에 비해 1유로당 1달러 이상으로 회복하며 안정을 찾는 분위기였다. 올해는 더 반등할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은 유로화 출범 이후 극히 드문 일이었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2000년 10월 사상 최저치인 0.82달러까지 떨어진 적이 있지만, 당시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유로화 지폐와 동전이 실제론 2002년 1월에야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유로화는 통화로만 존재하며 국가 간 거래 정산을 위한 회계 단위로만 사용됐다.
유로화의 패러티 붕괴는 유럽 시장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유로화는 세계 통화준비금 중 미 달러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통화다. 유로-달러 일일 거래액은 하루 평균 6조6000억 달러(약 8700조 원)에 이르는데, 세계 통화 가운데 가장 많은 거래 규모다.
탄탄하던 유로화가 무너진 건, 그해 유럽 전역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하자 독일, 영국 등 유럽 경제대국 기업들이 조업에 차질을 빚고 물가가 치솟았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달러화의 매력이 높아졌다. 세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달러화를 찾으며 상대적으로 다른 통화들이 약세를 보이게 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올해 말까지 1.15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존에서 성장이 둔화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미 연준의 금리 인하로 달러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캐나다왕립은행(RBC)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ECB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한 동안 저평가된 유로화를 피해 해외 자산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이제 유럽으로 돌아올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 투자은행 시티그룹은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향후 6~12개월간 1.02달러 수준에서 머물 것으로 봤다. 유럽은 소비 둔화와 재정 부양책 감소로 경기 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변수는 유럽 국가들의 재정 긴축 흐름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에너지 지원 규모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은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예산 600억 유로(약 86조 원)가 펑크나며 기존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CB의 통화정책도 방향타가 된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둔화돼 ECB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이 물가 상승세 둔화에 안도하며 그간 가동했던 물가 안정조치들을 완화하면 물가가 더 자극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