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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그후 3 / 25년 가정폭력 피난처, 신림동 2.5평 고시방

2025.01.25. 오전 11:10

* 고통과 상처에 대한 유별난 감수성, 타자에 대한 연민으로 천지만물에까지 애달파하며 치유의 글을 썼던 조선의 문장가 이덕무는 작디작은 방에서 살았다. 매미(선蟬)허물 같고 귤(橘) 속 같다고 묘사했던 ‘선귤당’에서. 퇴계는 도산서당의 한 칸 방을 두고 ‘도(道)와 이(理)를 완성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 지내도 싫지 않겠다’며 '완락재(玩樂齋)'라고 이름 지었다. 나도 그렇다. 이 작은 방에서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니 부족함이 없다 못해 넉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방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다. 내 삶과 글은 이덕무 쪽에 가깝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 뭔가 독창적인 이름을 붙이고 싶다. 호방했던 그의 벗 연암 박지원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덕배기에서 흘러내리는 흙 섞인 누런 빗물을 거슬러 올라가 겨우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도, 세간 나부랭이도 비에 젖은 채 뒹굴었다. 몸과 옷에서 떨어진 물이 방바닥을 흥건히 적셨지만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방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냥 웅크린 채 있었다. 볼이 뜨끈해졌다. 이번에는 눈물이었다.

비가 그친 후 배달을 시작했다며 오후 늦게야 이부자리가 날라져 왔다. 새 거라 그렇기도 하고 질이 나빠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석유계 화학약품 냄새가 심하게 났다. 환기가 되지 않는 좁은 방에 펼쳐 놓으니 냄새가 방 안 가득 번졌다. 게다가 스펀지 요를 깔기에는 방바닥 길이가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요 아랫부분을 얼마간 접고서야 겨우 잠자리가 마련됐다.

누워보았다. 윗목에 놓여있는 냉장고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했다. 신체검사할 때 키 재기 막대가 정수리에 닿기 직전 같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서 거꾸로 누워봤더니 이번에는 벽의 압박감이 버티고 있었다. 이리 누우나 저리 누우나 그게 그거, 오직 머리를 어디로 둘 것인가만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창가 벽 쪽으로 둘 것인가, 방문 쪽 냉장고에 붙일 것인가. 코골이 남편과 사는 동안 얼마간의 소음이 있어야 잠이 드는 습관이 있으니 결국 ‘냉장고와의 동거’를 택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냉장고가 '윙~'하고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물론 그 소리는 곧 익숙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고 소음이 없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후 냉장고는 소파 등받이요, 침대 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생활비를 마련할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무턱대고 왔으니 망정이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왔더라면 좌절과 불안이 더했을 것이다. 마른 걸레 짜듯 초 절약 생활에 돌입했다. 비누를 손에 문지를 때도 횟수를 셌다. 화장지의 칸 수도 꼼꼼히 세어서 잘라 썼다. 두 겹이나 세 겹 화장지는 무심코 같은 칸 수를 자를 경우 낭비가 심해서 홑겹을 썼다. 치약은 2밀리 정도, 샴푸는 완두콩 크기로 손바닥에 덜어 낸 후 세심하게 거품을 냈다. 라면 한 봉지를 두 번에 나눠서 끓여 먹고 한 끼는 굶고 자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살은 안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