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공약 놔두면 세금 폭증 닥친다[포럼]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제22대 총선도 끝났다. 선거기간에는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권에서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기 마련이다. 여야가 다를 게 없다. 지금 당선인들은 당선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겠지만, 유권자는 이제부터 당선인에게 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약을 이행하라고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과연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유아 1인당 누리과정 지원금 대폭 인상 △늘봄학교 단계적 무상 시행 △육아휴직 급여 상한 150만 원에서 210만 원으로 증액 △이자소득세 면제 재형저축 재도입 △경로당을 통한 점심 제공 주 7일까지 확대 △전국 철도 및 주요 고속도로 지하화 등이 대표적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출생 기본소득, 기본주택, 대학 무상교육,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어르신 하루 한 끼 지원’ 등의 5대 공약을 제시했다. 이 중 출생 기본소득은 현재 8세까지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확대해 17세까지 자녀 1인당 20만 원을 지급하는 정책이고, 대학 무상교육은 국립대와 전문대는 전액 무상, 4년제 사립대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내용이다. 여야의 공약 모두 어마어마한 재정이 필요하다.

총선 다음날이던 지난 11일 정부는 2023년 관리재정수지가 87조 원 적자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차감한 통합재정수지에서 당장 사용할 수 없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금’을 빼서 산출한 것으로, 말 그대로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재정지표를 의미한다. 지난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이 비율이 작년보다 높았던 때는 코로나19 시기와 외환위기 때뿐일 만큼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재정수지의 누적적자인 국가채무도 지난해 1127조 원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서 50.4%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인은 요술 방망이라도 갖고 있나?

당장 국민은,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전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지원금 지급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13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주 큰 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정부가 앞으로도 경제위기를 핑계로 이런 현금 지원 정책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선거는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 정책을 만들고 국민의 선호대로 국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기제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책 수행에 따르는 비용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한다. 내 아들딸이 소득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아예 자녀를 낳지 않는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고, 이에 따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재정 악화가 더 가속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이어진다. 그때마다 정당들이 이기기 위해 대중영합주의적인 공약을 남발하면 국가 앞날은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국민이 재정 건전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정당의 공약을 판단해 현명하게 투표해야 하는 이유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