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종이빨대 망했다" 공장엔 빨간딱지…절반 넘게 문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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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2.10. 오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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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무너지는 종이빨대 산업]①제조업체 현황 전수조사 결과 보니
[편집자주]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철회했다. 2023년 11월의 일이다. 정부 말만 믿고 '종이빨대' 생산 설비를 늘리고, 직원도 뽑은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 변경이 관련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친환경 빨대 제조사들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종이빨대 제조사 19곳 전수조사/그래픽=이지혜

정부가 2023년 11월 별다른 예고 없이 '플라스틱 규제'를 무기한 연기한 후 종이빨대를 생산하던 기업 중 60% 이상이 문을 닫았다. 극심한 수요 감소와 출혈 경쟁에 내몰려 폐업하거나 공장에 압류표목(빨간딱지)이 붙은 업체가 많아진 것이다. 살아남은 업체들도 매출이 줄고 있거나,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등 관련업계가 고사 직전인 상황이다.


종이빨대 기업 19곳 중 12곳 생산 중단


8일 머니투데이가 지난해 초 기준 전국에 존재하던 종이빨대 제조사 19곳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규모가 비교적 큰 서일·리앤비·폴메이드·홍익씨엠에스·씨엔제이글로벌·코스코페이퍼·유엠씨 7곳(36.8%)을 제외하고 나머지 업체의 경우 짧게는 지난해 7월, 길게는 재작년 11월부터 종이빨대 생산을 중단했다.

일각에선 종이빨대 업체들이 '본래의 플라스틱 빨대 회사로 돌아갔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의 과반인 최소 12곳(63.2%)이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를 사업 기회로 여겨 2018년에서 2023년 사이에 창업한 회사들이다. 부채 때문에 사업을 놓지 못하지만 활로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의 제이포레스트는 지난해 8월 폐업했다. 남은 업체들도 사업자등록은 살아있지만 공장 가동을 못하고, 회사에 직원 없이 창업주와 특수관계자들만 남아있다. 재고 소진도 벅찬 상태가 이어지면서 업계에선 서로 "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의 어메이징페이퍼도 "폐업 신고를 아직 못했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의 A사는 재고를 원가보다 낮게, 때로는 아예 무료로 떠넘기고 있다. 충남의 두리사랑은 창업자의 신용대출로 대출이자를 감당하고 있다. 공장에 빨간딱지가 붙은 충남 누리다온은 자녀 이름의 적금을 깼다.

앞서 정부는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2022년,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연기했다. 두번 모두 예고없이 시행을 2~3주 남기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종이빨대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관련 규제는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경기 포천의 N사는 공교롭게 규제 연기가 발표된 날 생산기계의 수입통관이 끝났다. 기계는 가동도 못했고, 투자금 약 30억원이 고스란히 부채가 됐다.


재기 막는 악순환.."현금흐름 적다고 입찰 떨어져"


지난 1년 동안 업계는 출혈 경쟁을 해왔다. 충남 아산의 씨엔제이글로벌은 올해 '스타벅스' 입찰에서 떨어진 후 폐업을 고민 중이다. 경쟁사가 단가를 25% 낮춘 탓에 가격경쟁에서 밀렸다. 이 업체의 주기성 이사는 "정상가 입찰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입찰에 실패하면 납품 실적이 적어져 다음 입찰도 따내기 어려워진다. 현재 종이빨대 내수는 스타벅스·투썸플레이스와 같은 유통사 10여곳이 차지하고 있다. 입찰경쟁에 참여하려면 재무건전성 지표를 제출해야 하지만 수요 급감 탓에 상당수 업체는 기준 미달로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충북 진천의 폴메이드는 미국의 거대 프랜차이즈 '인앤아웃'과 대규모 판매 계약을 논의했으나 납품 실적이 부족한 탓에 무산됐다. 또다른 업체는 스타벅스에 납품하지만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유엔(UN)의 플라스틱 감축 협약이 열리면 정부가 규제 논의를 재시작할 가능성이 있어 1년간 사업을 유지했으나 이제 폐업을 검토 중이다. 해당업체 대표는 "앞으로 규제를 한다는 건지, 마는 건지 정부는 말도 없다"며 "이런 불확실성 속에 어떻게 사업을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2023년에 "규제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며 "일회용품 감량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일회용품을 어떻게 감량할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종이빨대 업계는 사업을 접지도, 계속하지도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례처럼 보상으로서 사태를 매듭지어주길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한 종이빨대 업체 대표는 "앞으로 친환경 사업은 안하겠다고 각서라도 쓰겠다"며 "다시 재기만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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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출입을 마치고 산업부에 왔습니다. 중소기업을 맡습니다. 부서를 옮겼지만 어떤 제보든 주시면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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