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재 "법 위반했지만 유효"…갈등 더 키운 무책임한 결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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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24. 오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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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효력 유지’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 검찰수사권 박탈의 위헌성이라는 두 개 쟁점 모두를 5 대 4, 한 표 차이로 각하했다. 회원수 1500명의 한국법학교수회가 ‘명백한 위법’이라는 성명을 낼 정도였는데도 ‘문제없다’니 당혹스러운 결론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고심 끝에 내린 양심의 결정일 텐데도 상식적으로 보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다. ‘입법 과정에 하자가 있지만 효력은 있다’는 각하 논리부터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논란이 된 변칙 사보임,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에 대해 헌재는 법제사법위원장이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회의장이 검수완박법을 가결·선포한 행위는 합법적이라며 국민의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수사권과 소추권을 전제한다는 검찰 주장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각했다. ‘수사권·소추권 배분은 국회의 입법 사항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검찰 주장을 배척한 이유로는 충분치 않다. 더구나 수사·기소 분리론은 한국 같은 대륙법 국가에선 사례가 없다.

헌재 결정이 전체 9명 중 5명을 차지하는 특정 성향 재판관들의 ‘몰표 결과’라는 지적도 씁쓸하다. 모든 쟁점이 불과 한 표 차이로 결정 났는데, 각하 표를 던진 재판관은 모두 뚜렷한 ‘진보 성향’이다. 반면 중도·보수 재판관 4명은 “헌법상 소추권과 수사권, 법무 장관 관장 사무에 대한 권한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재판관 성향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 점은 법치주의와 의회주의가 특정 이념과 정파성에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키울 수밖에 없다.

‘불법이지만 유효하다’는 헌재의 결정으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여당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정치재판소”라고 대놓고 비난했고, 야당은 “법무 장관의 책임을 묻겠다”며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여야 공히 ‘정치의 사법화’를 조장하고 입법부 명예를 스스로 추락시킨 공범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입법 과정에서의 불법을 보완하고 검수완박으로 흔들리는 수사·사법 체계를 바로잡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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