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나도 사표 내고 싶지만 사고 수습이 먼저"

입력
수정2022.11.12. 오후 4:38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책임론 공방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김대기 대통령실장·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부터)이 11일 서울공항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뉴스1]
야권이 경질을 요구하고 여론조사에서도 사퇴 요구가 높은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책임론의 핵심 인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참사 후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이 장관은 이날 문자 메시지를 통해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 장관 인터뷰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필요하다면 정무적 책임도 따지겠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이뤄졌다. 보도에는 이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윤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그건) 정무직의 당연한 자세”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입장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게 진정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자리 보전에 뜻이 없다는 걸 알리면서도 지금은 사고 수습이 먼저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이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결위 정책 질의에서 ‘윤 대통령의 사의 요청은 없었느냐’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없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장관은 이날도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시작이 반”이라며 의욕을 내비쳤다. 경찰 조직 및 사고 대응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 4년 후배로 내각에서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Q : 경찰에서 제대로 재발 방지책을 낼 건가.
A : “내부적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Q : 경찰국 강화나 검찰청법 개정 등을 검토한다는 뜻인가.
A : “일단 사고 원인 파악과 분석이 급선무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효과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


Q :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A : “사실 경찰이 독자적 조직이라 아무도 간섭을 못 하는 게 문제다. 검사는 법무부 장관이 감찰·징계권을 갖지만 경찰은 자체적으로 감찰·징계한다.”

이 장관은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논란, 즉 ‘경찰 장악을 위해 경찰국을 만들어 놓고도 경찰 책임론이 대두되니 발을 뺀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경찰의 감찰·징계에 대해 “내게 일절 보고하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 내부의 경찰국 반발 기류에 대해선 “그걸 뚫어보려다가 반쪽짜리 경찰국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엔 서울공항에 나가 4박 6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는 윤 대통령을 배웅했다. 이 장관이 먼저 나와 기다렸고 오전 9시27분쯤 윤 대통령이 탄 차량이 공항에 도착했다. 이 장관은 주먹을 쥔 양손을 허리에 바싹 붙인 채 서 있었다. 평상시와 달리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이었다. 윤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 이 장관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이에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의 어깨를 두 번 “툭, 툭” 두드리며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단 2초에 불과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짧은 조우는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 장관 거취에 대한 ‘윤심’의 향배를 가늠할 단서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은혜 홍보수석은 전용기가 이륙하기 직전인 오전 9시33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서면 브리핑을 냈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 언급은 철저한 진상 확인 뒤 권한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원론적 취지의 발언”이라며 이 장관 경질론에 선을 긋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2초 조우’ 이후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 내부에선 오히려 자진 사퇴론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법률상 책임이 정리되면 지휘 감독과 정치적 책임을 따질 시기가 오지 않겠느냐”며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 장관의 거취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정무적 책임을 회피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참모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직접 경질하는 것보다는 이 장관이 빠르면 윤 대통령 순방 직후, 또는 이달 말께 이태원 참사를 수습한 뒤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가 거론되고 있다.

수적으로 볼 때는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자진 사퇴 불가피론과 불가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지만 무게중심은 조금씩 불가피론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고위 관계자도 “경찰과 소방을 총괄하는 이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그림 없이 돌파구를 마련하긴 쉽지 않다. 윤 대통령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라며 불가피론에 힘을 실었다.

이 장관 경질론과 사퇴론은 여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기 당권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행정안전부는)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로서 모든 책임을 지는 게 맞다”며 이 장관의 경질을 거듭 요구했다. 김기현 의원도 SBS 인터뷰에서 안 의원만큼 직설적이진 않았지만 “정치는 정치적 판단과 책임을 지는 것인 만큼 윤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를 잘 고려하실 것으로 본다”며 이 장관 경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일부 친윤 의원들이 경질 또는 사퇴론과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 의원들의 속내는 그렇지 않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일부 친윤계를 제외하고 이 장관을 감싸는 공개 발언이 적은 것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 장관에게 불리한 요소다. 11일 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8~10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6명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0%로 전주보다 1%포인트 올랐고 부정 평가는 62%로 1%포인트 내렸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엔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이태원 참사만 따로 물은 조사에선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적절하다’는 평가는 20%에 불과했다. 부적절했다고 평가하는 이유 중 1위(20%)로는 ‘책임 회피, 꼬리 자르기, 남 탓’이 꼽혔다. 이 장관의 거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댓글 미제공

중앙SUNDAY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