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단식이 명예훼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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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9. 오후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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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단식’ 눈감아줬다… 단식은 약자의 마지막 무기니까
강자가 훔쳐온 단식 투쟁… 단식의 정의가 오염됐다



2000년 11월 5일, 28세 여성 이롬 샤밀라(Sharmila·51)는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주를 장악하고 체포와 살인을 저지르는 군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군 특별권한법’ 폐지를 요구하며 그날부터 음식을 끊었다. 6일 후, 경찰은 그녀를 ‘자살 혐의’로 구속해 강제 식사를 시도했다. “입으로는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샤밀라와 타협, 코에 급식 호스를 꽂았다. 샤밀라는 한 번에 1년까지 구속되어 호스로 음식을 공급받았다. ‘단식-구속-석방-단식’을 반복하며 16년이 흘렀다. 운동가들은 “마니푸르에서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고, 대중은 ‘살아있는 성녀’라 칭송했다.

그러던 샤밀라가 2016년 8월 단식을 끝내고, 이듬해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상대는 약 2만표, 샤밀라는 90표를 얻었다. 단식 중 인도계 영국인과 만나 사귄 것에 보수적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2018년 11월 결혼 1주년이었던 샤밀라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결혼하려고 단식을 끝낸 창녀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민심은 비정했다.

‘단식 16년’은 사실 명명이 틀렸다.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해도, 곡기를 끊는 건 커다란 고통이다. 샤밀라의 투쟁은 외로웠다. 그래도 ‘단식 16년’은 아니었다.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나뿐인 목숨을 두고 벌이는 일이 단식 투쟁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 국제사회와 언론이 단식이라 부른 것이다. 일종의 휴머니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50일, 100일씩 단식했다는 사례가 여럿이다. 수군거리면서도 “뒤에서 선식 먹었나” 대놓고 묻지 않고,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식 투쟁은 ‘신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당뇨 질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월 31일 단식을 시작했을 때, 걱정보다 ‘응원’하는 이가 많았다. 정치인들이 줄줄이 현장을 찾아가 ‘인증샷’을 찍었고, 한 여성 지지자는 단상에 앉은 이재명 대표에게 절을 하려다 저지당했다. 실제 절을 올린 지지자도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려왔다. YS의 명언대로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 대표가 ‘죽음을 각오한 단식’을 시작했다고 믿었다면, 그런 현장에 아이를 데려와 사진 찍게 할 엄마는 없었을 것이다. 단식 보름께부터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양위’를 선언한 왕에게 읍소하듯, 은퇴한 원로들까지 나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식농성 6일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한 지지자의 큰절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표는 지금도 ‘단식 중’이라고 한다. 지난 18일부터 이 대표가 입원해있는 녹색병원 원장은 “전해질을 공급하는 최소한의 수액 치료만 하고 있다”고 했다. 식염수나 포도당 수액(輸液)만 주는 것처럼 들린다. 한 가정의학 전문의는 “장기 단식 환자에게는 포도당, 지질, 아미노산이 든 ‘3 챔버백’ 같은 영양 수액을 공급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병원도, 이 대표 측도 수액 처방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출퇴근 단식을 하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일에도 원고지 10여 장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남 다르다.

단식은 수십 년에 걸쳐 한국에서 ‘명예훼손’ 당해왔다. 국민은 몰라서도, 알고서도 모른 척했다. ‘대의’를 존중해서다. ‘이재명 단식’을 두고 이전보다 의심과 조롱이 많아진 건, 출발점이 ‘대의’라고 보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단식 기간 중 물과 소금 외 무엇을 먹은 적이 있는가, 없는가. ‘최소한의 수액’이란 ‘기초 수액제’를 말하는가 ‘영양 수액’을 말하는가. 그런 수액을 맞으며 음식 끊은 것도 단식이라 부르는 게 맞는가. 야당 대표가 먼저 답해주면 좋겠다. 단식은 ‘약자의 마지막 투쟁 수단’이다. 강자는 그런 무기를 훔쳐 훼손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하게 썼다면, 더 투명해야 한다. 최소한의 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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