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 양산하는 의원입법, 규제영향평가 왜 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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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의원입법 관행이 규제를 양산해 기업 성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규제학회가 공동으로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발의·제출된 법안은 모두 2만 5608건이나 된다. 이는 선진국 국회와 비교하면 수십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97%(2만 4785건)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부 제출 법안은 3%(823건)에 불과하다. 의원 발의 법안 중에는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1664건에 달했다.

우리 국회의 과잉입법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대 국회(2016년 5월~2020년 4월)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평균 법안 발의·제출 건수는 6035건이며 이중 법률에 반영된 건수는 2190건이었다. 이를 선진국 국회와 비교하면 법안 발의·제출 건수는 독일과 일본의 약 30배에 달했다. 법률 반영 건수도 영국의 45배, 프랑스의 30배, 일본의 23배, 미국의 12배나 된다고 한다.

국회의 과도한 입법 관행에 대해 의원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여야 정당들은 법안 발의 제출 건수를 소속 의원들의 평가 기준으로 삼거나 공천심사에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 결과다. 날림 법안 양산은 국회의 심의 기능을 약화시켜 졸속 입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원 발의 제출 법안 가운데는 특정 계층의 이익 보호를 위해 기업 활동을 저해하거나 국민의 실생활 불편을 초래하는 내용들도 적지 않다.

의원입법이 폭주하는 것은 발의 절차가 정부입법에 비해 턱없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정부입법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할 경우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규제영향평가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입법은 그런 절차가 없다.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된다. 이로 인해 정부가 국회를 통해 우회적으로 법안을 제출하는 ‘청부 입법’ 사례도 없지 않다. 의원입법이 각종 규제를 확대재생산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의원입법의 허술한 절차를 그대로 두고는 규제개혁을 외쳐봐야 헛일이다. 국회는 의원입법에 규제영향평가제 도입을 검토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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