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면제’ 남용은 위헌적 미래 약탈[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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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공공사업 타당성조사는 대규모 사업의 의사결정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다. 공공사업에서는 국민의 이익과 손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일반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사회적 편익(B)과 비용(C)을 계량화해서 BC 비율이 1보다 높아야 한다는 예산편성의 원칙은 일반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에 타당성조사가 본격 도입된 것은 1999년 외환위기 직후다. 김대중 정부의 예산 당국은 각 부처의 타당성조사가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직접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각 부처의 반발이 이어지자 행정부는 본 타당성조사 이전에 예산 당국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행정부의 시행령에 마련했다.

이후 예타는 행정부 예산편성 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각 부처에서 제안한 공공사업의 절반가량은 BC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예타의 방법론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 기계적인 계량적 분석이 의사결정을 주도하지 않도록 ‘경제성 분석’ 외에 ‘정책성 분석’과 ‘지역균형발전 분석’을 추가하며 정성적 분석을 강화했다.

예타는 예산편성이 정치적 압력과 흥정이 아닌 전문적인 분석에 근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회는 이러한 성과를 높이 평가해서 2007년에 예타를 국가재정법상의 공식 제도로 인정했다. 안보·문화재·재해복구 등 유용성이 낮은 5개 분야는 시행령에서 면제 대상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국회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시행령에서 예타의 면제 범위를 지역균형발전을 포함해 10개 분야로 확대했다. 이를 통해 이 정부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남발된 지역개발 공약들에 대해 ‘광역경제권 발전 선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예타를 일괄 면제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행정부가 예타 면제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시행령의 면제 조항을 국가재정법으로 이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행정부의 예타 면제가 또다시 남발됐다. 2019년 정부가 발표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등 다수의 사업을 예타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예타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분석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타 면제는 권력 집단이 공공사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예타 면제는 지역적 이익을 위해 미래의 보편적 국민을 대놓고 약탈하는 것이다. 예타는 지역균형발전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과학적인 분석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의사결정을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예타 면제 문제는 근래에 더 심각하게 흘러간다. 행정부의 동의가 없는데도 국회가 예타 면제에 더 열을 내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회는 국민의 부담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제헌헌법의 취지에 따라 행정부를 줄곧 견제해 왔다. 그런데 제21대 국회는 역사상 유례없는 변신을 하면서 대구∼광주 간 ‘달빛고속철’ 등 개별 사업에 예타 면제를 남발하고 있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한 행정부의 예산편성권까지 무력화하는 것이다. 국회의 이러한 위헌적 관행을 용인하는 역사적 과오를 윤석열 정부는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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