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준형 부동산신탁에 총량 규제 적용…"PF 연쇄 부실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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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1.20. 오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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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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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준공 신탁 NCR 반영 확대
자본 대비 위험액 한도도 신설…단계적 도입
"지방 신규주택·오피스텔 사업은 자금줄 잡기 힘들 것" 전망도


당국이 부동산신탁사의 토지신탁 리스크 관리 규정을 대폭 강화한다. 수수료가 높아 그간 신탁사들의 주요 먹거리로 통했던 책임준공확약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 신탁) 관련 건전성 기준을 확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토지신탁은 부동산 신탁사가 토지를 수탁받아 주택, 상업시설, 물류시설 등을 짓고 분양한 뒤 수익을 배분하는 개발사업을 뜻한다.20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부동산신탁사의 토지신탁 사업 내실화를 위한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 규정 변경 예고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책준형 신탁은 신용도가 낮은 시공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 위험을 분담하는 신탁 상품을 뜻한다. 신탁사가 대주단에 “약속한 일정 내에 사업장이 완공될 것”이라고 연대보증 식으로 확약을 제공하는 형태다.

만일 사업장이 제때 준공되지 않으면 신탁사가 대주단에 준공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그간 책준형 신탁이 건설사 부실을 신탁사로 전이해 PF 연쇄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그간 부동산신탁사들이 토지신탁을 적극적으로 수주하면서 부동산신탁사의 재무구조 등에서 토지신탁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신탁사업장의 분양률이나 공정률이 떨어지면 신탁사 재무 여건에 영향이 가고, 이는 다시 토지신탁 사업 진행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라 관련 규정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당국은 신탁사의 건전성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위험액 산정과정에서 책준형 신탁의 반영도를 기존 대비 확 높이기로 했다. 신탁사의 NCR은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눠 산출한다.

앞으로는 신탁사의 위험액 산정 요소로 책임준공의무가 있는 모든 유형의 토지신탁을 넣는다. 기존엔 관리형 토지신탁만 NCR 산정 요소로 들어가 책임준공확약이 엮인 차입형 신탁사업은 건전성 지표 계산 과정에서 빠지는 등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조치다.

책준형 신탁 사업 규모의 15%만을 신용위험액에 일괄 반영한 기존 방식은 앞으로 실 공정률, 예상 대비 공정률의 격차(갭), 시공사·신탁사의 책준 기한 도과 여부 등을 따져 사업장별로 차등 계산하게 하도록 개정한다. 공기가 늦어져 손해배상 가능성이 높아진 사업장은 신용위험액을 더 많이 반영하는 식이다. 신탁사가 고유계정으로 사업비를 조달하는 차입형 토지신탁은 이미 이 같은 방식을 적용받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그간엔 고정값 등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한 NCR 산정 방식을 정교화해 시행사·시공사·사업장의 실질 위험이 반영되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사실상의 신탁사업 총량 규제도 설정했다. 자기자본 대비 토지신탁 위험액 한도를 새로 도입한다. 신탁사의 토지신탁 사업에서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액이 자기자본을 넘기면 안 된다는 얘기다. 증권사 등은 이미 이같은 규정을 적용받고 있으나 부동산신탁사의 토지신탁에 대해선 별다른 한도 규율이 없었다.

당국은 이에 대해선 만 3년여간 단계적 적용 기간을 두기로 했다. 기존에 두고 있는 신탁 사업 규모가 이미 자기자본 이상인 신탁사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국은 신탁사의 자기자본 대비 토지신탁 위험액 비중 기준을 올해 말까지 150%로 잡았다. 이를 내년 말엔 120%, 2027년 말 안에 100%까지 내리라는 방침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분양률과 대손충당금이 많을수록 위험액이 차감되는 만큼 신탁사가 자체 관리 능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조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당국은 이같은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규정변경 예고한다. 이후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와 금융위원회 의결 등 절차를 거쳐 오는 7월1일자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신탁사가 토지신탁을 보다 안정적이고 내실있게 관리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수분양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안정적 부동산 공급 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취지대로 제도를 운용할 수 있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업계와 꾸준히 소통하겠다"고 했다.


책준형 신탁은 부동산 호황기 초입이던 2016년 도입됐다. 도입 초기 수년간은 부실 사례가 없었기에 다른 신탁 상품에 비해 느슨한 건전성 규정을 적용받았다. 신탁사가 직접 사업자금을 대는 차입형 사업에 비해 자금 부담은 덜하고, 일반 관리형 신탁보다 수익성은 높아 최근 수년간 규모가 급증했다. 14개 신탁사의 책준형 PF 총잔액은 2023년 말 기준 24조8000억원에 달했다.이번 조치는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에 영향이 클 전망이다. 이들은 앞서 모회사의 높은 신용도를 앞세워 수수료 높은 책준형 신탁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신한·KB·하나·우리 계열 신탁사의 영업수익은 2018~2022년 사이 70% 급증하기도 했다. 이중 일부는 책준형 신탁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지주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기도 했다.

한 부동산 신탁업체 관계자는 "신탁사들이 한동안 책준형 신탁 사업을 늘리지 않을 전망이라 앞서 차입형 신탁을 주력으로 밀었던 비금융계열 기성 신탁사들이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업계 일각에선 책준형 신탁비중이 높은 지방 신규 주택·오피스텔 공급난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실상의 총량 규제가 나온 만큼 이들 사업이 중장기적으로 자금줄을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당국은 개선안을 예정대로 시행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책준형 신탁 사업의 부실 우려가 늘면서 최근 한동안은 신탁사들도 신규 수주를 축소해왔다"며 "이번 조치가 단기적인 공급 충격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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