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폐족의 위기감에 시달리나?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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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결정 당 대표에 위임하다니
이런 의원들에겐 세비가 너무 많다
사병 체제 정당에 엄청난 국고 보조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자신의 사저 계단을 걸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데일리안 = 데스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경남 양산 평산마을의 문 전 대통령 자택에서 30여 분간 단독 회담했다. 둘만이 나눌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키워드는 ‘명문정당’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우리는 하나다”의 뜻으로 그렇게 이름 붙였다. 그는 “총선을 즈음해 친문·친명을 나누는 프레임이 있는데, 우리는 하나이며 단합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당의 단합을 당 안팎으로 과시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반갑게 맞은 것은 ‘친문 세력’의 건재를 소망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실 친명과 친문은 이미 빙탄(氷炭: 얼음과 숯)의 관계다. 이 대표로서는 당내에서 문 전 대통령의 흔적을 싹 지워버리는 게 좋겠지만 선거를 앞두고 화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전 대통령의 처지는 훨씬 절박하다. 당에서 내쳐진다면 과거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친노세력의 처지를 ‘폐족(廢族)’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친문도 ‘폐족’의 길 위에 서게 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며 기세등등하던 그 추종자들은 ‘개딸’들의 위세에 눌려버린 지 이미 오래다. 만약 민주당이 총선에서 지고, 당이 손을 놓으면 저 서슬 퍼렇던 ‘적폐청산’의 법정에 자기 일족이 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을 법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라는 주문에 더 절박하게 매달리는 게 아닐까?
선거제 결정 당 대표에 위임하다니
그런데 ‘명문정당’이라는 이름이 이들의 한계다. 도대체 이들이 국가를 무엇이라고 여기면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됐는데 문‧이 두 사람이 그 답을 내놨다. 이들의 인식에 공당(公黨)은 없다. ‘친문’과 ‘친명’이 있을 뿐이다. 정치적 목적도 사적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총선에서 이겨,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이고, 문 전 대통령은 당 내에서 일정 지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서열은 일찌감치 정해진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이 먼저 숙이고 들어갔다. ‘문명정당’이 아니라 ‘명문정당’이라며 상석을 양보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친문세력이 숨 쉴 여지를 만들어주면 고맙겠다는 심정이었을까? 서울고검이 지난달 18일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다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바로 턱밑에까지 수사의 창끝이 닥친 것이다. 민주당의 비호가 절실해졌는데, 그 조직은 이 대표에게 거의 완전하게 장악되어 있다. 어쩌겠는가, 립 서비스라도 제대로 하는 수밖에….

정치를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사적 욕구의 충족 수단에 둔다는 점에서는 문·이뿐만 아니라 민주당 거의 전체가 유사해 보인다. 164석의 국회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당 대표 수비수 역할 말고는 이렇다 하게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당 대표를 수사한다고 검찰을 정치탄압세력‧독재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걸핏하면 탄핵 압박을 가한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켜놓고는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한다고 집단으로 나서서 성토해댄다. 그게 다 이 대표의 사법적 족쇄를 벗겨주기 위한 충정의 ‘요란한’ 표현이다.

국회의원쯤 되면 이성적·지성적 판단을 감정적 판단에 앞세울 법한데 이들에게는 행동 통일밖에 없다. 한목소리로 충성을 과시하는 것이다. 마치 광장의 군중 같은 모습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대표에게 다 일임하고 자신들은 스피커 역할, 행동대원 역할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인상이 역력하다. 이 대표가 ‘우리’의 범주에 포함시킨 ‘북한의 김정일, 김일성주석’ 체제에서는 그걸 ‘수령 뇌수론’이라고 했다.

원내 제1의 거대정당이 투쟁 수단으로서의 입법농단에는 ‘잔재주, 큰재주’ 가릴 것 없이 구사하면서도 정작 시급한 선거제도 수정·개편에는 굼뜨기 이를 데 없다. 태업 정도가 아니라 숫제 파업이다. 선거는 목전에 이르렀는데 여당 및 여타 야당들과의 협상안조차 안 내놓고 있다.
이런 의원들에겐 세비가 너무 많다
아마도 이 대표의 뜻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다. 보스가 결정하면 일사불란하게 따를 준비는 늘 되어 있지만 스스로 결정해 앞장서 본 적은 없었던 탓이겠다. 그러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내놓은 방안이 가관이다.

“당의 입장을 정하는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강선우 당 대변인이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 후 이렇게 밝혔다. 선거제도를 고쳐 정하는 일을 당 대표에게 위임했다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게 민주당임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그는 그냥 위임이 아니라 ‘포괄적 위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위임‧일임이 독재정치의 연원임을 민주당 의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당 대표에게 ‘포괄적 위임’을 하는 것은 그게 확실한 충성 서약이기 때문이겠다. 이것이 직전 집권당이자 지금도 입법 농단을 예사로 하는 거대 민주당 의원들의 정치행태이고 수준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의원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까닭이 있는지, 국회의원 자신들은 물론 전체 유권자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장기표 특권폐지정당(가칭) 상임대표의 주장으로는 의원들이 누리는 특혜·특권이 180여개에 이른다. 이걸 언제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마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의원의 세비를 중위소득 수준으로 낮추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올해 국회의원의 세비는 1억5690만원이다. 이것과는 별도로 국회의원 사무실 경비로 연간 1억1000여만원, 보좌진 9명에 대한 급여 5억4000만원을 합하면 8억원에 이른다(연합뉴스, 2. 3). 보좌진은 4급 2명, 5급 2명, 6, 7, 8, 9급 각 1명에 유급 인턴 1명이다. 인턴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공무원 신분이다. 이 많은 보좌 인력이 국회의원 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국회의원 세비의 경우, 국민 1인당 GDP 대비로는 세계 1위다. 우리의 1인당 GDP는 작년 31위였다. 보좌 인력을 이렇게 많이 국비로 제공하는 나라도 우리 외엔 없다. 일본은 3명이다. 민주당 정권이 복지국가의 모델로 선망(羨望: 부러워하여 바람)해 마지않던 스웨덴의 의원들은 개인 보좌관을 둘 수 없다. 입법지원이 필요할 때는 당에 요청해, 당 소속의 정책 보좌관 도움을 받는다. 보통 정책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을 돕는 구조다(월간조선, 23년. 11월호).
사병 체제 정당에 엄청난 국고 보조
한국의 의원들이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일까? 어림없는 말이라는 것은 모든 국민이 잘 안다. 날이면 날마다 정쟁을 벌이는 게 이들의 본업인 것으로 인식될 정도다. 고급 보좌 인력들이 45평의 널찍한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든다. 의원 자신이 일부러 할 일을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국회의원 지원은 이 정도에 그치지도 않는다. 막대한 규모의 국고보조금이 정당에 지원된다.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던 2022년 정당별 국고보조금 지급 규모는 민주당이 684억여 원(48.2%), 국민의힘이 602억여 원(42.5%)이었다. 여타 정당들에도 규정에 따라 지급된다. 정당은 당원들의 당비나 사업수입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국고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당연히 수혜자가 된다.

국회에는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가 해당 업무를 지원한다. 각 정당에도 정책기구가 있다. 역시 국고에 의존해서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소속 의원들의 입법활동 등을 돕는다. 그런데도 개인별로 또 보좌관을 9명씩이나 거느릴 수 있는 것이 한국의 국회의원 자리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올해 국민의 중위소득은 월 573만원이다. 연봉으로는 6876만원으로 국회의원 연봉에 비해서는 8800만원이나 적다. 국회의원이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만한 대우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국민이 각자의 입장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중위소득자라고 다를 바 없다. 최저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나름으로는 숨이 턱에 닿도록 노동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국민의힘 한 비대위원장은 2일 “중위소득으로 세비를 받는 게 만족스럽지 않은 분, 공복으로서의 일을 못 하겠다고 하는 분은 당초 여기 오시면 안 되는 분”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 2, 2).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만한 과제다. 선거 때이니까 내걸 수 있는 공약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의원에 대한 인적 지원과 재정적 지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회의 입법 및 행정부 감독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필수적 부분”고 했다던데(헤럴드경제, 2. 4) 다른 나라들은 의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인가? 모든 권한과 책임은 당 대표에게 위임하고 대표의 사병(私兵) 역할에만 몰두하고 있는 의원들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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