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짓눌린 내수…지표 빨간불
내수 부양할 정부 지출여력은 제한적
“대출규제 강화·의무지출 개혁 등 필요”
정부와 가계가 진 빚이 올해 2분기(4~6월 말)에 사상 처음으로 3000조 원을 넘어섰다. 경기 부진, 감세 기조로 '세수 펑크'가 계속되면서 국채 발행이 늘어난데다 최근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빚투(빚내서 투자)'로 가계 부채마저 급증한 결과다.
사상 처음으로 3000조 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계신용)와 나랏빚(국가채무)은 높은 이자 비용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제한하고 정부의 재정역량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국가채무(지방정부 채무 제외)와 가계 빚(가계신용)은 총 3042조 1000억 원으로 처음으로 3000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명목 GDP(2401조 원)의 127%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분기 말 기준 국가채무는 전분기보다 30조 4000억 원 늘어난 1145조 9000억 원, 가계신용은 13조 8000억 원 급증한 1896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국가채무는 국채(국고채·국민주택채·외평채)·차입금·국고채무부담행위 등으로 구성되며, 이중 국고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다.
나라·가계 빚은 올해 2분기에만 전분기(2998조 원)보다 44조 원가량 늘었다. 올해 1분기(1~3월) 증가 폭(20조 원)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절정이던 2021년 3분기(7~9월)의 63조 원 이후 11개 분기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국가채무는 경제 규모와 비교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50.4%로 1982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1∼2019년 30%대에 머물다가 2020년 40%대로 진입한 데 이어 지난해 처음 50%를 넘어섰다.
가계신용은 1896조 2000억 원으로 올해 2분기에만 13조 8000억 원 급증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근 주택 거래 회복과 함께 관련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나라·가계 빚의 가파른 증가세는 고금리 장기화 기조와 맞물려 정부·민간 소비를 옥죄는 모양새다.
특히, 장기간 이어진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실질소득이 감소한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내수 관련 지표에는 줄줄이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수도권 집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뒤로 밀린 형국이다.
불어난 빚 탓에 정부 총지출과 금리 인하가 제약을 받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지만, 내수 회복에 기여할 통화·재정정책의 재량은 축소된 모습이다. 불어난 국가채무로 내수를 부양할 정부의 지출 여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늘어 재정건전성을 제약하면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 급등 등과 같은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금융 건전성을 강화하고, 의무지출 개혁으로 정부의 지출 여력을 늘리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와 관련, “현시점에서는 결국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 밖에 없다”며 “DSR 적용 대상에 전세자금 대출과 정책자금 대출을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