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단지 ‘특별조정관’ 필요하다[시평]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속도 경쟁 된 반도체 콤플렉스

日 구마모토에 뒤진 평택·용인

反기업 정치 돌파할 대책 절실

전력·용수 등 병렬적 해결 가능

정부의 적극적인 조정은 필수

부처-지자체-기업 머리 맞대야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먹거리다. 지난 20여 년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또한, 반도체는 국가의 최고 전략 아이템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기업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각각 수직계열화돼 있어 반도체에서의 성패가 우리나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문제는 반도체 국제 경쟁력이 속도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경쟁 업체보다 6개월 빠르면 시장을 지배한다. 그런 만큼 삼성과 하이닉스 반도체 콤플렉스를 빨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지난 2월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기쿠요(菊陽)마치에서는 대만 반도체 업체인 TSMC가 86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를 들여 세운 반도체 공장의 개소식이 열렸다. TSMC는 2021년 10월 구마모토현에 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불과 2년 4개월 만에 공장을 준공했다. 건설 발표 6개월 만에 착공했고, 사실상 365일 24시간 체제로 밤낮없이 건설해 2년여 만에 완공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삼성 평택 반도체 단지는 안성 서안성변전소에서 평택 고덕산업단지 인근 고덕변전소를 연결하는 송전선로의 경과지를 결정하는 데 지역 주민들과 5년여를 갈등해 왔다. 급한 쪽인 삼성전자가 750억 원이나 드는 송전선 지중화 비용을 부담해 총 24㎞의 송전선 중 쟁점이 된 경기 안성시 원곡면의 산간 1.5㎞ 구간을 매설하는 방식으로 건설키로 했다. 임시로 지상 송전선을 사용하되 2년 후에 지중화하는 중복 지출 부담을 떠안았다. 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역 민원으로 11개월이나 지체됐다. 그리고 토지와 지장물 보상에 1년 6개월이 걸렸으며, 용수 공급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1년이 지연되는 등 3년가량이 늦어져 아직 착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해법은 없는가? 아니 능력이 있을까? 법을 바꾸지 않고, 즉 정치의 탁류에 시달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현행 법령 아래에서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융통성 있게 속도전을 펼 수 있다. 우선, 환경·전력·용수·부지 매입 및 보상 등의 과정을 요령껏 병렬적으로 배치해 소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분쟁으로 어떤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상당한 금액을 공탁하는 등 그 분쟁 단계를 다른 과정과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공급이나 용수 문제 등도 관련 정부 기관들과 공사들이 협의해 균형 잡힌 대안을 찾고, 복합적인 방안도 찾아 나갈 수 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 등 매우 복잡하고 상호 충돌하는 규제도 최근 정부의 규제 개혁 흐름에 맞춰 세부 조항들을 업데이트하고 선제적으로 적용하면, 상당 부분 현실적인 대안들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힘들지만 애국적인 헌신을 해야 하나?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한다. 반도체 콤플렉스 건설과 관련해 그간 정부는 방관자였다. 복수의 지자체와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및 여러 공사(公社) 등이 각자 자기의 입장만 고수했다. 국민 입장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조율하거나 통합하는 내적 역량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

해법은, 일단 국무총리실에 특별조정관을 임명하고 반도체 콤플렉스 완공을 미션으로 주는 것이다. 규제 개혁과 부처 조율을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부 직원, 각종 인허가와 조율을 해야 하는 경기도청 및 시청 직원들과 관련 공사 직원들로 조정관실을 꾸리게 한다. 이들이 모여 공장 완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다이내믹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일정을 늦추는 각종 병목(보틀넥)을 파악해 그 장애 요인을 제거하거나 통과할 방법을 개발토록 해 보자는 것이다. 새만금청이나 특별자치도지원단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또한, 삼성이나 하이닉스의 최고 경영진도 정부나 지자체·지역주민·여론 탓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심으로 나라의 역량을 집결하는 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간의 고생과 노력을 국민은 잘 알고 있으며 감사하고 있다. 미래의 대한민국에도 계속 공헌해 주기를 기대한다.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