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명품 잠수함'에 1000억 벌금…방위사업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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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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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안창호함, 협력업체 문제로 납기 지연
'가혹한 시험조건, 도전적 연구개발'에도
정부 당국 "인정 못한다" 지체상금 부과
방위사업법 개정안, 도전적 연구개발 장려
조속한 법안 처리로 방산업체 눈물 닦아줘야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 지난 달 25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방위사업법개정안(K-방산지원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낙찰자 결정기준, 한국산 우선획득제도, 착·중도금 지급 범위 확대, 핵심기술 인센티브, 지체상금 감면 등 방산기업들이 크게 환영할 만한 규제혁신이 포함돼 있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제46조 4와 5의 ‘지체상금의 부과 및 감면’이다. 이유는 2021년 한국의 조선소가 세계 최고의 명품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의 개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1000억원에 육박하는 지체상금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이번 신설조항인 제46조의 4의 ‘지체의 원인이 방위사업계약상대자와 정부 또는 협력업체에 함께 있는 경우’와 제46조의5의 ‘국내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로 해석 될 경우, 지체상금을 감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부칙에 이 법은 시행 이후 적용된다 명시돼 있지만 유권해석 또한 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도산안창호함은 방위사업청에서 지정한 협력업체가 공급한 33억원 짜리 어뢰 기만기 발사장치 결함으로 95일간 해군에 인도가 지연 됐다. 그러나 인도 지연으로 발생한 지체상금 전액을 건조조선소가 지불했다. 잠수함 건조 베테랑인 영국도 최신 핵잠수함 인도에 5년이 지연됐고, 사업비도 무려 2조원(13억 5000만 파운드)이나 증가했지만 이렇게 과다한 지체상금을 부과한 적은 없다.

만약 중소기업에서 1000억원에 가까운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할 경우 도산을 피할 수 없다. 처음으로 잠수함 독자건조를 시도한 조선소가 불과 95일 지연 후 세계 최고 수준의 잠수함을 만들어 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세계적인 뉴스거리였기에 도산안창호함은 2022년 대한민국기술대상(대통령표창), 올해의 10대 기계기술상, 세계 일류상품 등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주관기관인 방사청은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필자는 2007년 도산안창호함 건조 사업추진전략을 세웠던 전 잠수함사업 팀장으로서, 당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국가기술력을 총결집하겠다”고 보고했고 한국 최고의 기업·기관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잠수함 건조 관련 기업들이 참여를 꺼려 할 만큼 개발 리스크가 큰 도전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리스크를 떠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명품 잠수함을 만들어 냈는데도, 선물은 고사하고 고액의 벌금 폭탄을 받았을 때 사업추진 전략수립 당사자로서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번 인도 지연 문제를 일으킨 어뢰기만기는 시험발사 시 수심을 변경하면서 24발을 모두 성공시켜야 하는 절차였다. 그러나 2차대전 초 독일의 잠수함 발사 어뢰는 명중률도 아닌 발사 성공율이 고작 25%에 그칠 정도였다. 수중에서 발사 절차가 유사한 기만기의 100% 성공은 가혹한 시험조건이라는 얘기다.

도산안창호함 (사진=해군)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도산안창호함에 적용된 기만기 발사 시험조건은 ‘가혹한 시험조건, 도전적인 연구개발’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방기술품질원에서는 기만기 발사시험이 ‘가혹한 시험조건, 도전적인 연구개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함으로써 지체상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 도산안창호함 사업추진전략을 들여다보면 방사청에서 유권해석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방사청은 국방기술품질원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왜 방사청은 기술품질원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는지, 기술품질원에서는 무슨기준으로 ‘가혹한 시험조건, 도전적인 연구개발’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명품잠수함 개발 성공을 폄훼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정부의 요구로 가혹한 시험조건과 개발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까지 성공시킨 기업에 과도한 벌과금을 물게 한다면, 향후 어떤 기업이 방위산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 할지 의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방위사업법개정안에는 이러한 억울함을 달래주고 계약업체가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취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법 통과 후 잘만 활용하면 정부와 기업이 상생발전할 수 있는 길이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와 정부는 하루빨리 방위사업법개정안을 추진해 방산업체의 눈물을 닦아주고 자주국방과 국민경제 활성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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