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는 같은 말이 문맥에 따라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이 문제를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다음 예문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1.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2. 그는 사업에 실패해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었다.
예문 1의 ‘빚쟁이’는 다른 사람에게 받을 돈이 있는 채권자를 뜻하는데, 예문 1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고, ‘빚쟁이’는 악착같고 악랄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예문 2의 ‘빚쟁이’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채무자를 뜻하는데, 경제학적 용어로 이야기를 하자면 빚이 많아서 디폴트 선언하기 직전에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금방 갚을 수 있는 적은 돈을 빌린 사람에게는 빚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문 1의 빚쟁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놓여 있는, 어쩌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불쌍한 사람일 수 있다.
우리말에서 이처럼 같은 말이지만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좀 더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감’이다. ‘유감’이라는 말은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을 유감으로 생각한다”와 같이 사용될 때는 사과의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일본 총리의 발언에 강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와 같이 사용될 때는 상대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는 말이 된다. ‘유감’이라는 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나 ‘불쾌하게 생각한다’와 같이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때의 문제를 중화시키기 때문에 모호한 표현을 좋아하는 정치나 외교에서 만능키처럼 사용된다.
‘빚쟁이’가 상반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한 단서는 사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전에는 ‘빚쟁이’에 대해 ‘「1」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에는 처음에 생긴 말을 1번에 적고, 확장된 의미를 2번 이후로 적는다. 그렇게 본다면 ‘빚쟁이’는 채권자의 뜻으로 처음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접사 ‘-쟁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되어 있다. ‘겁쟁이’는 겁이 많은 사람이고, ‘멋쟁이’는 멋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빚쟁이’는 빚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돈을 많이 빌린 사람을 떠올리지, 돈을 많이 빌려 준 사람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런 논리적인 문제 때문에 ‘빚쟁이’의 의미는 점차 채무자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이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빚쟁이’가 갚기 어려울 만큼의 빚을 가진 채무자를 뜻하는 것으로 더 많이 사용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그 빚쟁이는 빚쟁이에게 시달렸다”와 같은 식으로 두 개가 한 문장 안에서 동시에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채무자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빚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예문 2에서처럼 단수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한 명의 ‘빚쟁이’한테는 여러 명의 채권자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채권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빚쟁이’는 예문 1에서처럼 ‘빚쟁이들’과 같이 복수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말이 정확한 논리를 찾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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