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전략 부재, 주식백지신탁제 등 쟁점 부각“대한민국에서 여태 이런 공무원 조직은 없었다”.
혁신의 모범 사례로 우주 개발 대도약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로 남을 것인가?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 제정안을 둘러싼 기대와 논란들이다.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 주요 국정과제에 따라 우주항공청 설치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왜 다른 분야들도 시급한데 우주항공 분야만 청 단위 중앙행정기관까지 특별법으로 만들어 육성해야 하냐는 것이다. 정부는 치열해진 국제 우주 개발 경쟁에 대응하면서 민간 우주 산업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필요성으로 들고 있다. 최원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우주개발을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고 민간 위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면서 "지체하면 할수록 세계적 우주 경쟁에서 더 뒤지게 되므로 빠르게 체제를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주 개발 전략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유일한 수익 분야인 우주발사체 시장이나 우주 관광 등을 이미 사실상 스페이스X 등이 선점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했지만 1kg당 발사 비용 등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져 단시일 내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국가 안보ㆍ미래 기술 연구개발 차원에서 필요한 우주발사체ㆍ위성ㆍ외계 탐사 등 우주 개발 분야에서도 기존 투자가 워낙 빈약해(연간 7000억원가량) 미국ㆍ중국 등에 비해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뒤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연간 수십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비슷한 위상ㆍ역할을 할 우주항공청을 개청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 같은 화려한 대외적 수사에 집착해 일단 조직은 만들더라도 수십년간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우주개발에 얼마나 예산을 투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논란은 여전하다. 자칫 겉으로는 NASA처럼 커다란 조직을 구성해 놓고 현실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2021년 누리호 개량사업 예비타당성 검토 과정에서도 "시장성이 어둡다. 차세대 발사체는 퀀텀 점프가 필요한데 과연 그렇게 투자할 여력과 이유가 있냐"는 의견이 나왔었다.
유능한 외부 인재를 채용하겠다며 내세운 주식백지신탁제 예외 조항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현재 고위 공직자의 공무 수행상 공ㆍ사적 이해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업무와 관련된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민간 우주산업에선 많은 전문가가 창업ㆍ기술 투자를 통해 기업체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고수할 경우 우주항공청에 민간 기업ㆍ연구기관ㆍ대학 등의 뛰어난 인재를 모셔올 수 없다. 최 단장은 "인사혁신처에 자문을 구한 결과 가장 필요한 과제로 건의해왔다"면서 "민간의 꼭 필요한 전문가들을 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할 경우 자칫 전 부처에 걸쳐 제도 자체가 불신ㆍ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고의적ㆍ기만적으로 이해 충돌 회피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를 어떻게 예방ㆍ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전무한 상태다. 서휘원 경실련 선거개혁운동본부 팀장은 "현재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며, 우주항공청의 경우 이해충돌 가능성이 더 심할 것으로 보이는데 예외를 적용해준다면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면서 "공정한 직무 수행의 기본 조건으로 전문성과 별개의 문제로 미국에서도 플랫폼을 만들어 철저히 감시하는 등의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용 특례 조항도 여러가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력경쟁채용 대신 스카우트 제도 도입, 외국인ㆍ복수 국적자 채용 허용 등은 전문가 유인용으로 타 부처에 비해 전례없는 특례제도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의 투명성 보장ㆍ검증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비리 가능성이 우려된다. 심지어 정부는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폐지하면서 2020년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벌어졌던 중국인 채용 논란을 인용한 바 있다. 외국인ㆍ복수 국적자 채용시 국가 안보 보장과 비밀 보호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딱히 대책도 수립돼 있지 않다. 최 단장도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왔다.
임기제 공무원 위주의 조직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다른 부처들이 국가공무원법으로 신분 보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계약만으로 임용ㆍ면직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우주항공청 설치법안이 특별법이라 다른 법률에 비해 우선 적용되므로 시행이야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장기적ㆍ안정적 고용 보장이 어려운데다 타 부처 임기제 공무원과의 형평성 논란, 공무원노조들의 반발 등이 우려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기관 관계자는 "현재 정년이 보장되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연봉을 대폭 많이 주지 않는 이상 5~10년짜리 계약직에서 일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사천 입지를 정하고 지자체ㆍ국가에 정주 여건 조성 책무를 부여한 것도 골칫덩이다. 정부는 2022년 초 세종시 입주 중앙부처 공무원들에 대한 아파트 특별공급이 논란이 되자 아예 법을 개정해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사천에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경우 미니 신도시급 개발이 불가피해 재원 부담ㆍ특혜 논란 재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서 최소 4~5시간 거리인 사천의 지리적 특성상 숙소 및 정주 여건 제공은 단순 편의 제공이 아니라 가장 핵심 목표인 '우수 인재 영입'의 필수 여건이다. 과기정통부 한 공무원은 "세종시에서 사천까지 4시간이 걸리는데 출퇴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면서 "과천에서 내려온 지 2년여밖에 안 됐는데 또 옮기려 하는 사람이 있겠냐, 민간 전문가들도 사천이라는 말에 고래를 젓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체제와의 차별성 확보 방안도 아직 뚜렷한 윤곽이 드러난 상태가 아니다. 현재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나 한국천문연구원(KE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기존 우주개발 R&D 수행 연구기관들은 과기정통부와 정책ㆍR&D 기획ㆍ예산 등을 협의하면서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누리호는 KARI가 국책연구사업으로 대부분의 업무와 연구개발을 주도해왔고, 과기정통부는 지원·관리만 했다. 중간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감사 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우주항공청이 설치될 경우 R&D도 독자적으로 수행해 간다는 방침이어서 기존 체제와의 차별성 확보가 필수 과제다. 하지만 아직 세부적인 업무 분장ㆍ협업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최 단장은 "모든 형태의 연구개발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기존 기관들이 하던 것들은 그대로 하면서 필요한 것은 자체적으로 하도록 제한적으로 설계되고 있다"면서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R&D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아직 윤곽만 있을 뿐 시행령을 통해 정해지는 사항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기존 연구기관들이 어차피 대부분의 R&D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주항공청이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