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단 한명 후 끊긴 한국 '우주인'…15명 키워낸 일본의 조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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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1.08. 오전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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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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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 회장
"심우주 탐사는 로봇의 세계, 韓도 유인비행 나서길"
그러나 한국 이소연 이후 우주비행사 육성 명맥 끊겨
"한국 우주 레벨 높아…민관 합동으로 전략 만들어야"]

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 겸 과학자인 모리 마모루(毛利衛) 일본과학관협회장. 그는 1985년 일본인 우주비행사 중 한 명으로 발탁돼 1992년 9월 미일협력 우주실험에 참가했다. 특히 1986년 1월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했음에도, 우주비행사 훈련을 중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두려움 보단 어린시절부터 동경해왔던 우주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고 말했다. 또 2000년에도 다시 한 번 우주에서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 사진=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

"유인(有人) 우주비행은 흑백을 철저하게 가립니다. 단 하나의 애매함, 작은 실수 하나로 생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죠. 유인 우주비행에선 기존에 결코 알 수 없던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됩니다."

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 겸 과학자인 모리 마모루(毛利衛) 일본과학관협회장은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진행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유인 우주비행'을 기존 지식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험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한국이 우주 지식을 확장하려면 심(深)우주 탐사뿐만 아니라 유인 우주비행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모리 회장은 최근 중앙과학관 국제과학관심포지엄(ISSM) 참석차 방한했다.

모리 회장은 "우주탐사는 철저히 로봇의 세계지만, 인간이 우주로 갔을 땐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가 보이고 예상외 문제들이 벌어진다"며 "일본과 미국은 각각 자국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별로 우주에 대한 경험과 배워온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의 특성을 살려 해결할 수 있는 우주 문제들이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향후 우주탐사에 나서려면 유인 우주비행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 회장은 1985년 일본 첫 우주비행사로 발탁된 인물이다. 1992년 9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우주왕복선 엔데버(Endeavour)를 타고 STS-47 임무를 통해 우주에서 각종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2000년 2월에는 STS-99 임무를 통해 다시 한번 우주를 탐험했고, 당시 과학 장비를 활용해 지구 표면의 3차원 지도 등을 만들었다.

일본은 현재까지 모리 회장을 포함해 우주비행사 15명을 배출했다.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 12명을 포함해 최근 민간에서도 3명이 나왔다. 특히 와카타 코이치(若田 光一), 호시데 아키히코(星出 彰彦) 등이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장을 맡을 정도로, 일본은 우주강국으로부터 강한 신뢰를 얻고 있다.

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 겸 과학자인 모리 마모루(毛利衛) 일본과학관협회장. / 사진=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



한국은 이소연 이후 우주인 명맥 끊겨



일본이 유인비행으로 우주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한국은 이소연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 이후 우주비행사를 육성하지 않고 있다. 이 박사는 2008년 4월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에 탑승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다.

하지만 이 박사가 2012년 돌연 미국 유학을 택하면서 우주인으로서의 공적역할을 방기했다는 이른바 '먹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우주인 양성에 쓰인 예산은 260억원가량이었다. 이후 국내에서 우주비행사 육성에 회의적 시각이 제기됐고 10여 년 넘게 우주비행사 명맥이 끊겼다.

이와달리 모리 회장은 지구로 귀환한 뒤 약 3년간 일본 47개 지역자치단체에서 200여회에 걸쳐 꿈나무들에게 우주를 강연했다. 2000년대부턴 일본과학미래관(미라이칸)에서 20여년간 관장으로서 활동했다. 그는 1992년 유인 비행 당시에도 우주에서 일본 어린이들을 위한 생방송 과학 수업을 열었다.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사였던 이소연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 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였던 모리 마모루 일본과학관협회장과는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08년 우주여행 이후 지구로 돌아왔고, 2012년 항우연 퇴사 이후 돌연 미국행 유학길을 떠났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은 후발국…"우주개발 민관 합동이 효과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상은 주한일본대사관 직원, 타무라 테츠유키(田村 哲之) 주한일본대사관 과학관(1등서기관), 모리 마모루(毛利衛) 일본과학관협회장. 이들은 일본 유인 우주비행 현황을 논의하고, 본지와 한국 우주개발 방향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사진=국립중앙과학관
모리 회장은 한일간 직접 비교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일본은 40년 전부터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그곳에 우주인을 보낸다는 비전을 세웠다"며 "그 목표 아래 미국과 협력을 가속화하면서 영역을 늘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과거부터 천체를 관측한다거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문화가 있었다"며 "저도 어린시절 망원경을 가지고 천체를 관측하거나 우주, 과학기술 관련 SF(공상과학) 영화와 만화 등을 보면서 우주를 동경해왔다"고 했다.

모리 회장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우주개발 방향을 묻는 말에는 "한국은 삼성전자와 현대, LG 등과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많다"며 "민관이 합동으로 우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방안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우주 비즈니스 레벨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현재 일본과 미국이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관측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산업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타이밍을 한국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인이 논의해 유인 우주비행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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