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도 품질 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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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7.19. 오후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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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덜 들이고 생색내는 ‘녹색 프리미엄’ 기업 많아전력 소비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기업의 자발적 캠페인인 RE100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영국의 비영리 기후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운영하는 글로벌 RE100의 참여 기업 수는 7월 14일 기준 374곳이다. 올해 가입한 31개 회사 중 10곳이 국내 기업이다. 2020년 SK하이닉스 등 SK그룹 계열 6개사가 처음 RE100에 가입한 후 2021년 고려아연과 LG에너지솔루션, 아모레퍼시픽 등 8개사가 추가로 합류했다. 올해엔 상반기에만 현대·기아차, KT, LG이노텍 등 7개사가 추가됐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 아모레 뷰티 파크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 아모레퍼시픽 제공


정부는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글로벌 RE100 이행을 돕기 위해 2021년 1월 한국형 RE100(K-RE100)을 도입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 수는 지난해 42개사에서 올해 7월 기준 119개사로 늘었다. 하지만 국내 RE100 참여 기업의 외형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목표인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라는 관점에서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낮은 재생에너지 발전, RE100에 걸림돌



가장 큰 원인은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 클라이밋 그룹이 지난해 연례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일본과 함께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장 어려운 국가로 꼽힌다.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EMBER)는 지난 4월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0년 한국의 8대 수출 대기업(SK하이닉스·삼성전자·LG디스플레이·현대제철·현대자동차·포스코·삼성SDI·LG전자)의 국내외 전력 사용량은 84.9테라와트시(TWh)로, 같은 해 한국에서 생산된 풍력 및 태양광 발전량(21.5TWh)의 약 4배에 달하는 양”이라면서 “한국의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향후 10년 동안 핵심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이다. 일례로 애플은 2030년까지 협력업체에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요구하고 있다. 2015년 ‘공급망 클린 에너지 프로그램’을 시작해 협력업체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도록 조언과 압력을 가하고 있다. 기관투자자와 거래선의 압박과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대의 속에서 삼성전자도 RE100 가입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했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장인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삼성전자의 2021년 국내 전력 사용량은 18.41TWh(국내 1위)인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미미한 상황이다. RE100 이행수단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시행된 녹색 프리미엄 제도(전기소비자가 기존 전기요금에 1㎾h당 10원 정도의 추가비용을 더해 한전에 납부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사용확인서를 발급받는 방법)로 재생에너지 490기가와트시(GWh)를 구매한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지난해까지 수원·기흥·평택·온양·구미 사업장에 모두 합해 3.99M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와 평택에 200RT(냉동톤) 규모의 지열 발전 설비를 설치했다.

RE100에 가입했다는 국내 기업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RE100 연례보고서(2021)에 따르면 자료를 제출한 기업을 기준으로 할 때 RE100 참여 한국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낮은 곳은 엘살바도르, 아제르바이잔, 스리랑카, 모로코, 볼리비아, 파키스탄 등 소수에 그친다.

재계는 RE100 이행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재생에너지 조달 가격과 공급 부족을 꼽았다. RE100 가입을 준비 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자체가 매우 낮아 RE100 측이 이야기하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어려운 국가로 항상 꼽힌다”면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도 지난해부터 시작됐는데 뒤늦게 마련된 감이 있다”고 말했다. RE100에 이미 가입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녹색 프리미엄에 비해 재생에너지 공급계약(PPA·전기소비자와 발전사업자 간 계약을 통한 구매)을 통한 재생에너지 구매는 비용이 높게 형성돼 기업 입장으로서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면서 “비싼 금액을 준다 하더라도 수요 대비 재생에너지 공급처가 적어 구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그린워싱 가능성 높은 녹색 프리미엄

국내에서 RE100을 이행하는 수단으로 현재 가능한 방법은 6가지다. 이중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해 직접 사용하는 ‘자체건설’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일정 지분을 투자하고, 해당 발전사와 제3자 PPA 또는 재생에너지공급 인증서(REC) 구매 계약을 별도로 체결하는 방법인 ‘지분투자’가 재생에너지 설비를 신규로 늘리는 효과(추가성)가 가장 크다. 그다음으로 REC 거래 시장에서 REC를 구매하는 방법, 한전의 중개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제3자 PPA’와 직접 발전사업자로부터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직접 PPA’가 있다.

마지막은 녹색 프리미엄 제도로, 가장 저렴해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지만 추가성은 가장 낮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으로 인정받지만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는 인정받지 않는다. 임장혁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녹색 프리미엄 제도의 취지는 기업들이 낸 돈을 재원 삼아 정부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자는 것인데 재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공개하지 않을 뿐더러 상당 부분의 돈이 PPA 프로그램의 송배전 망사용료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면서 추가성이 현저히 낮다”고 평가했다.



에너지공단이 제공한 7월 기준 ‘K-RE100’ 현황 정보에 따르면 녹색 프리미엄을 택한 기업은 전체 119곳 중 85곳을 차지하고 있다. REC 구매(28개), 제3자 PPA(2개), 직접 PPA(1개)와 자체 건설(14개)에 비해 월등히 많이 선택됐다. 올해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을 인정받은 양으로 보면 녹색 프리미엄이 467만㎿h로 REC(3만㎿h), 자체 건설(약 4000㎿h)을 압도한다. 현대엘리베이터(연 3㎿)와 아모레퍼시픽(연 2.8㎿)이 최근 제3자 PPA를, 아모레퍼시픽이 지난 3월 SK E&S와 연 5㎿ 규모의 직접 PPA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발전 실적이 통계에 잡히지는 않았다.

RE100을 선언한 기업들이 이행 수단으로 녹색 프리미엄만 많이 택할 경우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추가성이 높은 다른 제도를 상당 부분 활용하면서 물량 부족이나 제도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녹색 프리미엄을 사용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에 기여하는 것은 일부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도 “탄소중립과 RE100 로드맵도 없이 녹색 프리미엄을 일부 구매하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한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그린워싱이라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RE100을 주관하는 더 클라이밋 그룹은 그린워싱으로까지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가능한 추가성이 높은 수단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표했다. 더 클라이밋그룹의 RE100 캠페인 관계자는 주간경향에 “가능하다면,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전력망에 새로운 재생에너지를 추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기업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해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1킬로와트시당 100원 내외인 산업용 전기요금에 비해 PPA는 180원 정도로 비싸다. 제3자 PPA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때 별도의 망사용료(부대비용을 합해 1킬로와트시당 약 50원)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받아 따낸 배출권을 통해 비용의 일부를 보전할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은 큰 편이다.

RE100 이행의 품질을 평가할 때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려, 규모의 경제에 따른 장기적인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PPA 등 RE100 이행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장 전문위원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 비해 녹색 프리미엄 위주로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PPA를 택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PPA에 비해)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낮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서 배출권 수익을 보고 감축에 나설 유인이 적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의 유연성도 아직 부족하다. 제3자 PPA를 체결하려면 발전사업자의 발전설비를 합산해서 1㎿를 초과해야 한다. 수요자 참여도 1㎿를 초과하는 전력을 사용할 경우로 제한된다. 상대적으로 전력 수요가 적은 기업이나 단체가 재생에너지를 쓰려고 해도 이 기준에 걸려 PPA 활용을 할 수 없다. 임장혁 연구원은 “전기소비자는 발전사업자가 생산하는 전체 발전량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어서 소비자와 발전사 간의 자유로운 계약을 제한하고 계약체결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이격 거리 규제와 복잡한 인허가 규정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사들이 설비 건설에 필요한 장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기업이 PPA를 체결할 수 있는 발전설비 공급이 제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직접 PPA 제도의 세부 고시를 마련하면서 이런 제약점을 일부 개선하려 하고 있다. 산업부의 전력시장과 관계자는 “직접 PPA에선 초과발전량을 발전사업자가 전력시장에 팔 수 있도록 했고, 발전설비 용량이 1㎿를 초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제3자 PPA처럼 여러 발전설비를 합산해 1㎿를 초과해도 된다는 조건도 달아 규모가 작은 발전소를 모아 PPA 공급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n(다수 재생에너지 발전소) 대 1(수요자)은 가능하지만, 1 대 n이나 n 대 n도 가능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100을 이행하는 6가지 방법을 놓고, 기업이 실제 계획대로 실천하는지, 관련 데이터는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재생에너지를 실제 늘리는 효과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요구하는 활동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RE100 이행 기업들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 전문위원은 “녹색 프리미엄 제도로 10%를 채울 경우 PPA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1% 달성한 것과 같이 취급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지표로 가중치를 둬 RE100 이행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평가를 위해서는 먼저 RE100과 K-RE100 가입 기업 대상으로 혹은 국내 100대 전력다소비기업 대상으로 전체전력소비량, 재생전력소비량,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 조달제도별 재생전력 소비량 등에 관한 정보를 정부가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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