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2030 월드컵 개최지로 유럽 2, 아프리카 1, 남미 3국 발표
유럽 이베리아반도의 이웃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들 나라와 지중해를 두고 마주보는 북아프리카 모로코, 그리고 대서양 건너 8000㎞ 떨어진 남미 우루과이·파라과이·아르헨티나. 세 개의 대륙, 다섯 시간대에 걸쳐 있는 여섯 나라에서 2030년 단일 스포츠 종목 세계 최대의 이벤트인 남자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린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4일(현지 시각) 이 같은 ‘벌떼 월드컵’을 발표한 직후부터 후폭풍이 거세다. 선수들의 이동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엽기적인 결정이라는 비판 속에 특정 국가를 위한 ‘큰 그림’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주(主) 개최국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다. 예선 대부분 경기와 결선 토너먼트 등은 이 세 나라에서 열린다. 이에 따라 16강전 이후 ‘빅 매치’는 마드리드·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 리스본(포르투갈), 카사블랑카(모로코) 등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막전을 포함해 조별 리그 세 경기는 우루과이·파라과이·아르헨티나에 배정된다. 월드컵 탄생 100주년 기념 대회임을 감안한 조치라는 게 FIFA 설명이다. 1회 개최국이 우루과이였다. 조 편성 결과에 따라 일부 팀은 이동 거리가 2만㎞가 넘을 수 있다.
FIFA는 참가국 수가 크게 늘었다는 점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본선 48국(기존 32국) 체제로 재편됐다. 이 경우 FIFA 규격 경기장 최소 12곳이 필요하다. 단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서 공동 개최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2026년 월드컵은 미국·멕시코·캐나다 공동 개최다.) 월드컵은 암묵적으로 대륙별로 돌아가며 열려, 개최가 오래된 대륙일수록 유리하다. 지금으로선 남아프리카공화국(2010년)을 끝으로 월드컵 개최를 못 한 아프리카 대륙이 유리한데, 유일한 개최 희망국 모로코는 거대 이벤트를 소화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 스페인·포르투갈이 모로코에 손을 내밀었다. 남미에선 우루과이·파라과이·아르헨티나가 합심했다.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 유럽과 남미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서로 경쟁에 나서자 부담을 느낀 FIFA가 ‘다 함께하자’는 정치적 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스포츠 비평지 디애슬레틱은 여섯 나라가 개최권을 가져간 이번 결정을 ‘윈윈윈윈윈윈’(둘 모두에게 좋다는 ‘윈윈’을 여섯으로 늘린 말)이라고 비꼬며 “결과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차기 대회 개최의 길을 열어줬다”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FIFA에선 ‘아시아 대륙’으로 분류된다. 프로축구 등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사우디는 월드컵 개최를 희망한다고 알려졌지만 이웃 나라 카타르가 2022년 개최했기 때문에 ‘순번’을 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30년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유럽·남미 대륙이 ‘한 방’에 개최를 하게 됐기 때문에 다음 개최지가 아시아여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사우디는 2030년 ‘6국 공동 개최’가 발표되자마자 2034년 월드컵 유치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국력 과시를 위해 단독 개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출신 잔니 인판티노는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을 거쳐 2016년 FIFA 회장에 취임해 3연임 중이다. 그가 추진했던 정책 중엔 논란이 일어난 것이 적지 않다. 취임 이듬해 남자 월드컵 본선 참가국 수를 48국으로 확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월드컵의 위상이 하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가 중동의 실세들, 특히 사우디 인사들과 ‘특별한 관계’라는 관측도 잇따라 제기됐다. 인판티노 FIFA 체제에서 사우디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등 축구 스타들을 자국에 영입했고 국영 기업 아람코는 20세 이하 월드컵 후원사로 등장했다. 2018년 러시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에서 인판티노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나란히 앉은 모습이 포착되며 “사우디의 월드컵 개최가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사우디와 ‘맞짱’을 뜰 나라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아직은 도전 발표를 한 나라가 없다. 올해 여자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호주·뉴질랜드 및 아시아의 대국 중국·인도 등이 거론되는 정도다. 사우디는 빈 살만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뒤 글로벌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9년에는 사막에 건설 중인 신도시 네옴시티에서 동계 아시안게임을, 2034년에는 수도 리야드에서 하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전도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이 같은 행보 뒤엔 독재나 인권 침해 등으로 나빠진 이미지를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세탁한다는 ‘스포츠 워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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