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FTX에 출금 신청했는데 아직도 안 되고 있다. 손절해서 (투자금을) 날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어이없게 잃으니 허망하다.”
FTX의 파산 신청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투자 손실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물이 여럿 등장했다. FTX는 한때 거래량 세계 3위를 기록한 미국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였으나 11월 11일(현지 시간)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11월 2일 미국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FTX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이 대부분 FTT(FTX 자체 발행 암호화폐)로 이뤄져 재무 건전성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FTX에 60억 달러(약 8조 원) 규모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고 끝내 파산으로 이어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통념을 거스른 FTX의 파산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일주일 사이 20% 가까운 낙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회복세를 보이던 암호화폐 시장이 FTX 파산 탓에 다시 어두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FTX 파산은 ‘코인판 리먼 사태’ ‘코인판 엔론 사태’로 불리며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FTX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가 자금을 투자한 암호화폐 솔라나는 전주 대비 가격이 60% 넘게 떨어진 1만6000원대를 기록했다(11월 14일 오후 3시 기준). 주요 암호화폐 가격도 급락했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은 각각 -19.64%, -20.3%씩 내려앉았다. 비트코인의 경우 11월 10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이후 2400만 원대까지 올랐으나 FTX 파산으로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다시 2100만 원대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FTX 파산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선 빗썸경제연구소 리서치센터장은 “FTX가 파산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의 위험성이 수면 위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투자자가 예치한 코인을 불법적으로 유용해 대차대조표상 자산이 거의 없는 거래소가 몇 군데 더 있다”며 “크립토닷컴 등 거래소의 추가 파산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되는 신규 자금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향후 각국에서 생겨날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도 시장에 악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수용 한국블록체인학회장(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금융회사와 달리 지급준비금 등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안전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안전망 구축 여부가 전적으로 CEO에 달렸다는 게 FTX가 파산한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박 학회장은 “각국의 거래소 규제가 금융회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해질 가능성이 커 당분간 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