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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환자, 생각 내비 대로 휠체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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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04. 오전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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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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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샷] 움직이는 상상하면 뇌파 발생
인공지능이 해독, 휠체어 작동
표지판 4개 지나 방안 이동
전극 이식 안해 불편 감소

마비환자가 생각대로 휠체어를 작동시켜 방안에서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미 텍사스대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가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움직여 장애물을 지나 원하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뇌에 전극을 심거나 눈피로를 야기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텍사스대의 호세 미얀 교수 연구진은 지난 19일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사지마비 환자가 전극이 달린 두건을 쓰고 훈련을 한 끝에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움직여 방에서 장애물을 피해 이동했다”고 밝혔다. 미얀 교수는 “아직 복잡한 거리를 움직일 정도는 아니지만, 환자가 지내는 일정한 공간에서는 스스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환자 몸에 불편 주지 않고 훈련

이전에도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대로 휠체어나 로봇을 작동시키는 연구가 있었다. 뇌파를 전기신호로 바꿔 컴퓨터와 정보를 주고받게 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이다.

지금까지 휠체어를 움직이는 BCI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됐다. 먼저 환자가 특정 위치로 휠체어를 움직이고 싶을 때 컴퓨터 화면에서 반짝이는 점이 해당 위치에 왔을 때 집중해서 쳐다보는 것이다. 환자는 훈련 도중 눈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뇌신호를 얻는 방법도 있다. 뇌에 이식한 전극이 휠체어를 움직이려고 할 때 나오는 신호를 감지해 휠체어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의 점을 보는 방식보다 정확도가 높지만,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감염의 위험이 있다.

이번 연구진은 전극 31개가 달린 두건을 환자 머리에 씌우고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상상할 때 나오는 뇌파를 감지했다. 이를테면 휠체어를 왼쪽으로 움직이려면 두 다리를 든다는 생각을 하고, 오른쪽은 두 팔을 올리는 상상을 하는 식이다. 전극은 감각운동피질에서 나오는 신호를 감지해 약속한 대로 휠체어를 작동시킨다.

환자 3명은 1주에 3번씩 5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한 번 훈련에 좌우 이동을 60회 정도 반복했다. 논문에 따르면 26세 1번 환자는 처음 10회 훈련 동안 휠체어 이동 정확도가 37%에 그쳤지만 10회 더 훈련하고는 87%까지 향상됐다. 56세 3번 환자는 같은 기간 67%에서 91%까지 정확도가 높아졌다.

반면 59세 2번 환자는 훈련 내내 정확도가 67%에 머물렀다. 미얀 교수는 “누구보다 빨리 잘 배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2번 환자처럼 배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 조지아공대의 한국인 과학자인 여운홍 교수는 뉴스사이트인 데일리비트에 “훈련이 쉽지 않은 사지마비 환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마비환자는 두건을 쓰고 장기간 훈련하기 힘들며 다른 병도 있는 경우가 많아 연구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가 팔다리를 움직이는 생각을 하면 두건에 달린 전극 31개가 뇌파를 감지한다. 이 뇌파는 휠체어 뒤에 달린 컴퓨터에서 해독돼 휠체어를 작동시키는 전기신호로 바뀐다(왼쪽). 환자는 이 방식으로 병실에서 표지판(wp) 4개를 지나는 경로를 이동할 수 있었다(오른쪽)./iScience

개인차 밝혀 훈련 효과 극대화 기대

연구진은 이번 방법이 실제 환경에서도 통하는지 실험했다. 환자들에게 생각대로 휠체어를 움직여 폭 15미터(m)인 병실에서 네 개의 표지판을 지나 이동하로독 했다. 1번 환자는 29회 시도 동안 평균 80% 정확도로 4분 만에 모든 표지판을 통과했다.

3번 환자는 11회 시도 동안 평균 20% 정확도로 7분만에 표지판을 통과했다. 2번 환자는 5분 만에 3번째 표지판까지 75% 정확도로 도달했지만 전체 경로를 완주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훈련 결과가 개인마다 다른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환자마다 훈련 결과가 왜 다른지 밝혀내면 BCI가 뇌신호를 더 정확하게 감지하고 훈련 방식도 보다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훈련 효과가 좋았던 환자들은 좌우 동작을 상상할 때 나오는 뇌신호가 더 뚜렷했다고 밝혔다.

또 뇌신호를 감지하는 두건에도 문제가 있다. 두건을 머리에 고정하기 위해 젤을 바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젤이 말라 신호 감지 정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켄트대의 팔라니아판 라마스와미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젤 대신 피부나 귀에 붙일 수 있는 인쇄형 전극을 쓰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과학자들이 함께 진행했다. 스위스 제네바 위스 생물신경공학연구소의 이규화 박사도 참여했다. 이 박사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BCI 전문가이다.

참고자료

iScience, DOI: doi.org/10.1016/j.isci.2022.105418



기자 프로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 과학에디터입니다. 앞서 조선일보에서 19년 과학기자로 일했습니다. 사이언스카페와 사이언스샷, 이영완의 디알로고,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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