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칼럼]교원 성비 균형부터 맞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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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선생님 통해 마음 다잡는 법 배워
사제 간 이해 부족하면 징계·처벌에 의존
교권 실추 만큼 교직 '여초 현상'도 심각
소통·배움의 터 만들도록 성비 균형 이뤄야

[서울경제]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실추된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등 교권을 침해해 학급 교체, 전학, 퇴학 등 중대처분을 받으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겨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학생인권조례도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도록 지원한다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학생의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해 교사의 지도력을 약화시켰고, ‘내 새끼 지상주의’와 맞물려 교권 실추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세운 경기도교육청은 가장 먼저 개정 방침을 밝혔고 서울시교육청도 학생의 책무성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해는 가지만 배움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학생 인권에 대응해 징계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사회화의 터전이기도 하다. 공부도 공부지만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요구할 것과 양보할 것을 구분하는 법,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시기인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부분의 학생이 입시에 매몰되는 탓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사회화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졌지만 그만큼 철이 덜 든 아이들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좌충우돌하면서 멱살잡이도 벌어진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일수록 특히 그렇고 좀 더 큰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면 이런 행동은 대부분 이 연령대의 성장 과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일 수 있다. 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성인들도 어릴 적 크고 작은 일탈을 했던 경험이 있다. 다만 공식적인 징계로 결론이 난 적은 많지 않았다. 대신 선생님들은 우리의 일탈을 엄하게 꾸짖고 벌하면서도 기록에 남는 징계보다 우리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통해 사회화를 이끌어 주셨다. 당신들도 똑같은 일탈을 경험한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를 잘 이해하셨고 그만큼 조언과 훈계도 진심으로 다가왔다. 학교는 교과를 배우는 곳이기도 했지만 철없는 방황과 일탈을 마무리하고 미래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 법을 인생의 선배님들로부터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선생님들은 인생의 선배 역할을 잘 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계신다. 그런데 여건은 녹록지 않다. 학생인권조례가 선생님들의 손발을 묶는 도구로 왜곡된 것도 문제지만 교직의 압도적인 여초 현상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남녀 선생님의 능력과 의지에 차이가 없어도, 여학생들은 깊은 고민을 여자 선생님께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방황하는 남학생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남자 선생님이 아무래도 더 잘 이해하고 그만큼 소통이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15년 전이지만 서울시교육청의 연구에 의하면 학부모의 87.1%, 교원의 89.5%, 학생의 63.5%가 교사의 성비 균형을 맞추는 데 찬성했고 남교사할당제에도 학부모의 80.6%, 교원의 73.9%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차별 우려에도 이렇게 찬성이 많았던 이유는 학생지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고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상호 이해와 소통을 통한 배움의 장소여야 한다. 물론 일탈 학생의 처벌도 필요하고 학생인권과 교권의 균형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학교에 배움을 되돌리기 어렵다. 사제 간 소통이 어려울수록 학생지도는 점점 더 징계와 처벌에 의존하게 되고, 여기에 막무가내로 제 자식을 감싸는 학부모까지 가세하면 소통과 배움에 앞서 대립이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 세우려면 학부모, 학생 및 교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고 교육 당국도 많은 정책적 고민을 해야 한다. 우선 그 가운데 성비 균형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교사와 학생의 성비를 맞추는 것이 크게 생색나는 정책은 아닐지 모르나 학교를 다시 소통과 배움으로 채우기 위해 ‘작지만 꼭 필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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