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업' 두 가문, 법정 달려갔다…고려아연 분쟁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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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7.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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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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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협력 상징' 서린상사 이사회 장악 시도…'경영권' 유지해 온 영풍 "지분 앞세운 폭력" 반발
2022년부터 고려아연 '최씨' 지분 확대로 영풍 '장씨'와 갈등…주총 표대결 이어 계열사 문제로 소송전 '결별 수순'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재계의 대표적인 '한 지붕 두 가족' 그룹인 고려아연(010130)과 영풍(000670)이 종속회사인 서린상사의 주주총회 개최를 놓고 법정 앞에 설 전망이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설립한 이후 그룹으로 성장하면서 서로의 지분을 교차 소유하고 경영 간섭을 최소화하는 동업관계를 이어온 75년 전통이 파국 위기에 처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달 서린상사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이날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주요 주주들에게 통보했다. 서린상사 최대주주인 고려아연은 이날 이사회에서 서린상사 사내이사 4인을 주주총회에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올릴 계획이다.

현재 서린상사 이사회는 7명으로 고려아연 측 4인(고려아연 최창걸·최창근 명예회장, 노진수 부회장, 이승호 부사장)과 영풍 측 3인(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서린상사 장세환·류해평 대표)이다. 사내이사 4인이 추가 선임되면 이사회 구성은 8대 3으로 고려아연이 사실상 장악하게 된다.

문제는 영풍 측이 이사회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서린상사의 경영권 분리를 시도 중인데, 영풍 측은 "일방적인 경영권 장악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고려아연은 지난 14일에도 임시이사회를 열려고 했지만, 영풍 측 3명과 고려아연 측 1명의 불참으로 정족수를 못 채워 무산됐다.

업계는 이날 임시이사회도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려아연 측이 4명으로 과반이지만 이 중 최창걸 명예회장이 와병 중이라 영풍 측 협조 없이는 이사회를 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영풍 측이 막아서면 서린상사가 28일로 예정한 임시 주주총회 개최도 불투명해진다.

영풍그룹의 비철금속을 유통하는 서린상사는 고려아연 측이 66.7%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지만, 지분율 33.3%인 영풍의 장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다. 그룹 양가(兩家) 기업들이 공동 구매한 원료를 서린상사를 통해 공동 판매하는 등 '우호의 상징'이었지만, 양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제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기업인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장씨 일가의 영풍(지분 25.15%)이지만 경영은 최씨 일가에서 맡아 왔다. 그러다 최씨 집안 3세인 최윤범 회장 취임 후인 2022년부터 최 회장 측이 주식 매수 및 외부 우호세력과의 자사주 교환·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지분 확대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씨 집안 2세 장형진 영풍 고문 측도 지분 희석에 대응해 고려아연 주식을 사들이면서 지분 경쟁과 갈등이 확대됐고, 급기야 올해 주총에서는 고려아연의 배당액 결정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정관 변경 안건을 놓고 표 대결까지 벌이며 얼굴을 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우호지분까지 고려한 양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거의 비슷하다. 주총 이후 영풍은 지난해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신주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발발한 '서린상사 경영권 분쟁'은 75년간 동업 관계를 이어왔던 고려아연과 영풍이 완전히 갈라서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 30%가 넘는 계열사 중에서 영풍이 경영권을 갖고 있거나 두 회사가 협업 중인 곳은 서린상사가 유일하다.

서린상사 사태가 양측 갈등의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서린상사는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남인 장세환 대표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어 장 고문의 경영권 승계와 연관이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 측과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장 고문 측의 약한 고리로 서린상사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일단 서린상사 주총 문제로 법정에 설 전망이다. 상법에 따르면 주총은 반드시 3월에 열려야 하는데, 총회 소집이 지연될 경우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총의 의장은 법원이 이해 관계인의 청구나 직권으로 선임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이사회 개최가 무산되면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측 관계자는 "주총이 이달 내에 열리지 못하면 법 위반이 되는데, 정작 회사의 대표(장세환)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직무유기가 벌어지고 있다"며 "(주총 개최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협의를 깨고 경영권 장악을 시도한 만큼 이사회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풍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고려아연의 제안으로 서린상사의 인적 분할을 협의 중이었는데 고려아연 측이 돌연 이사회 장악 시도에 나섰다"며 "지분을 앞세운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지난해 말 영풍 사업장 사망사고 이후 영풍이 생산과 영업 계획을 못 세우면서 서린상사를 통한 공동 판매 등이 불가능해져 해외 판매에 차질을 빚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경영 분리)을 적극 검토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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