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대부' 28년만에 퇴진 … SM, 이수만 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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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03. 오후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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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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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가 30년 가까이 이어온 창업주 이수만 1인 프로듀서 체제의 막을 내리고 'SM 3.0 시대'를 열겠다고 3일 밝혔다. 그동안 아티스트 제작과 매니지먼트, 마케팅 등 모든 부문의 권한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로 수렴돼 있던 것에서 벗어나 복수의 제작센터·레이블에 소속 아티스트를 분산 배치한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수반하면서 사실상 '이수만 없는 SM'의 시작을 알리는 세대교체를 단행하게 됐다.

핵심은 '멀티 제작센터·레이블'이다. SM엔터 산하에 5+1개의 멀티 제작센터를 두고 각 센터는 프로듀싱, 매니지먼트 등에서 독립적인 결정 권한을 갖고 소속 아티스트를 관리한다. 기존 아티스트별 1~5센터와 올해 데뷔 예정인 가상인간 아티스트 '나이비스'를 전담하는 IP 제작센터 등이다. 아티스트가 데뷔 후 독창적인 음악·사업 세계를 확립할 경우 별도 레이블을 설립할 수도 있고, SM이 힙합·발라드·R&D 등으로 장르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레이블을 인수할 수도 있다. 캐스팅·트레이닝 등 일부 기능은 센터 공동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SM 정체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센터를 통할하는 역할은 신설 'A&R커미티(위원회)'가 맡는다. 기존 총괄 프로듀서 역할과 일부 유사한 중재·조율 조직인데, 이 위원회의 장을 이성수 공동대표가 맡는다.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처조카다. 앞서 2005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에프엑스, 슈퍼주니어 등의 매니지먼트와 A&R 업무 경력이 있다.



SM은 이 같은 변화를 통해 지난해 대비 성장 수치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장철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존에 평균 3.5년 동안 1팀이 데뷔했던 것에 비해 1년에 2팀 이상 데뷔해 양질의 지식재산권(IP)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음반 부문도 지난해 31개를 발매해 총 1400만장을 판매했는데 올해는 40개 이상, 1800만장 이상 판매(각각 30% 이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장 CFO는 "각 센터의 아티스트 운영 계획이 정비되는 대로 매 분기 데뷔·음반 발매·공연 일정 등을 예측 가능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올해는 신인 그룹 3팀과 솔로 1팀이 데뷔한다.

SM의 '포스트 이수만' 체제는 그의 나이가 71세로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하면 언젠가 반드시 거쳐야 할 수순이었다. 이수만 프로듀서도 지난해 SM을 통해 "25년간 구축한 프로듀싱 시스템이 잘 운영돼 훌륭한 후배 프로듀서들이 큰 어려움 없이 (회사를) 잘 꾸려나갈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며 "물러나라는 소액주주들의 의견 또한 대주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1996년 H.O.T., 2000년 보아 등을 데뷔시키며 K팝 발전의 기틀을 쌓아올린 SM의 창업주가 경영권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 직후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면서 '씁쓸한 퇴장'이란 지적도 나온다. SM이 이날 전례 없이 상세한 회사 정보를 공개하고 나선 건 지난해 본격적으로 거세진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다. 1995년 회사 창업 때부터 약 27년간 이수만 프로듀서에 의지해 회사가 운영되면서 '오너 리스크'가 커졌고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됐다.

대표적으로 SM은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수년간 시달렸다. 음악 자문 명목으로 연간 100억원 안팎이 라이크기획에 지불되자 회사의 성장동력인 아티스트나 팬덤, 주주가 아닌 최대주주 주머니만 채우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SM 측은 2019년에도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맞섰지만, 이후 얼라인의 적극적인 주주 제안으로 결국 지난해 10월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조기 종료를 결정했다. 이어 지난달 20일에는 이사회 구성, 주주 배당, 프로듀싱 체제 개선 등 회사 운영 전반의 사항을 망라한 얼라인 측 요구를 전격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K팝 연구 전문가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일으킨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창업자가 회사를 탈취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이수만 창업자가 지금 시점에 기꺼이 회사를 내려놓고 축복하며 물러나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안다.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숱한 논란 끝에 드디어 지배구조 개선에 시동이 걸린 데 대한 기대감도 작지 않다. 이날 SM 주가는 9만5900원까지 급등했다가 전날 종가 대비 2.13% 오른 9만1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성수 대표는 "SM과 총괄 프로듀서 간 계약은 종료됐지만 여전히 주주로서 SM을 응원해주시는 이수만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K팝계 원로로서 대외 활동은 지속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이수만 프로듀서는 SM엔터와의 프로듀싱 계약이 종료된 후인 올해 1월 'SM 서스테이너빌리티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는가 하면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3, 조비에비에이션 초청 방문 등 활동 소식을 알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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