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 막은 노무현, 짐짝 취급한 MB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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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창호 기자]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비분강개하면서도 정작 그로 인한 피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필자가 어느 중증장애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사건은 민주주의 후퇴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사회적 약자가 무시당하고, 그들의 인간적 존엄이 훼손된다. 인간의 존엄이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훼손되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 모두의 인간적 존엄도 지킬 수 없게 된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참사를 참여정부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과 대비시켜 보려 한다.

경호원 가로막은 노무현 대통령

2007년 4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 차별금지 규제에 관한 법률'에 서명을 하는 행사가 열렸다.
ⓒ 이명옥

2007년 4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 차별금지 규제에 관한 법률'에 서명을 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사회복지사를 비롯해 복지관련 종사자와 장애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경제부처 장관들, 복지관련 장관들도 앞자리에 배석했다. 당시 국정홍보처장이었던 필자는 대통령, 총리가 참석하는 주요 정부 회의에는 거의 모두 참석했고, 그 결과를 브리핑했다. 당연히 이날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날의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이 입장해 자리에 앉자마자 벌어졌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휠체어를 타고 대통령 앞으로 다가오면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경호원들이 장애인을 에워쌌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 그것도 청와대 내 영빈관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호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사태를 수습했던 것 같다.

그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호원들을 향해 "손대지 마시오"라고 단호하게 지시했다. 이어 소동을 일으킨 박경석 대표에게 "딱 3분의 시간을 드릴 테니 할 말이 있으면 모두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소동의 주인공은 장애인 관련 입법을 서둘러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동안 아무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제 됐습니까? 이 자리는 장애인뿐 아니라 나라의 복지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만약 회의를 계속 방해한다면 이 회의를 취소하고, 저는 집무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경석 대표는 다시 한번 장애인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주대로에서 짐짝 취급당한 장애인

얼마 전, 필자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대구지부 최창현 회장의 초청으로 대구에 내려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최 회장은 사지가 뒤틀리는 뇌병변을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이지만, 휠체어를 타고 미국, 유럽, 중동, 일본 등을 횡단해 기네스북에도 오른 사람이다.

필자가 지난 7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강연회에 앞서 최창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대구지부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창호

그런데 최 회장을 돕는 이 협회 이경자 사무총장이 최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40일 간 구속된 데다 1심에서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씨가 고초를 겪은 사정은 이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구시청을 방문했던 2009년 9월 18일 오전, 이씨와 최 회장은 협회 회원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안과 관련된 선거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법원으로 갈 때부터 누군가 자신들을 미행하는 것 같았다. 법원을 빠져나올 때는 미행 차량이 2대로 늘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시정 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기회를 엿보던 최 회장 일행은 미행 차량이 신호등의 빨간불에 멈춰서자 번호판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이 사실을 눈치챈 미행 차량은 맹렬한 속도로 추월하더니 갑자기 핸들을 틀어 6차선 대로 한가운데서 가로로 차를 주차시켰다. 이어 차에서 내린 건장한 사내 2명이 사진을 내놓으라고 거칠게 요구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10명의 사내들이 몰려와 최씨 일행을 에워쌌다.

가까스로 포위망을 헤치고 나온 최씨 일행은 대구시청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시청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무고한 시민을 왜 미행하느냐, 책임자는 사과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당시 대구시청은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초긴장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 책임자가 부리나케 달려나와 사과를 했다.    

어느 정도 사태가 마무리되자 최 회장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타 협회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사내들이 다짜꼬짜 차를 막더니 이씨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씨는 원피스 치마가 들춰지는 등 심한 성적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사내들은 몸이 불편한 최 회장도 짐짝처럼 함부로 다뤘다. 근처 경찰서로 연행된 최씨 일행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어느 경찰은 최씨에게 "XX새끼" 같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기도 했다.   

백주대로에서 연행돼 유치장에 갇혔던 이씨는 다음날 구속됐다. 이후 최 회장은 몇몇 지인들로부터 미행을 했던 자들의 제안을 전해들었다. "이씨를 풀어줄테니 미디어법 반대에 나서지 마라, 이명박 대통령 고소한 거 취하하고, 이명박 대통령 반대시위하지 마라"라는 제안이었다.

결국 이씨는 공무집행방행 및 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특히 이씨는 몇 년 전 일로 집행유예상태였기 때문에 보석으로 나올 때까지 40여 일을 구치소에 있어야 했다. 또 1심에서 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현재 검찰이 항고를 진행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소란을 피웠던 장애인의 요구를 묵묵히 들어줬다. 이명박 정부 때는 장애인이 대통령 참석 행사장 밖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짐짝같은 취급을 당했다.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깊이와 수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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