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연장전에서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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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0.06. 오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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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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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에 공고해진 李 체제 결국 대선 연장전 돼버린 총선
극단적 진영 대결 또 벌어지면 정치 양극화 악순환에 빠진다

혐오와 대결 정치에 희망 접어 여도 야도 싫다는 무당층 30%
이제 이들이 중간지대에서 연장전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그럼 답은 빤하지 않나
정치하는 방식에 변화를 줘서 판을 흔드는 쪽이 이길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좀 미안한 얘기지만, 그의 체포동의안이 뜻밖에 가결됐을 때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하다가 약간의 흥분 상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가결 시 예상 시나리오 중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에 생각이 미치자 찾아온 그 미묘한 기분은 설렘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민주당 의총은 내 감정을 한층 고조시켰다. 친명계와 비명계가 격렬히 맞붙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당이 정말 쪼개질 수도 있겠구나,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내년 선거판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했다. 만약 국민의힘에서 분당 이슈가 불거졌어도 아마 비슷한 흥분을 느꼈을 듯하다. 누가 됐든, 뭐가 됐든 지금과 달라지는 거니까.

정치판의 변화에 대한 갈증은 지난 대선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 누적돼 왔다. 원래는 최대 이벤트인 대선이 어떻게든 변화를 가져와 갈증을 풀어주곤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정권만 바뀌었을 뿐 정치는 그대로였다. 극단적 진영 선거에서 근소하게 승패가 갈리자 양측은 선거하듯 정치를 했다. 민주당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고, 대통령은 선출된 야당 대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화가 없으니 타협이 될 리 없었다. 사사건건 정권의 발목을 잡았고, 시급한 입법 현안에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선거 때보다 더한 비방과 욕설의 현수막이 거리를 도배했다.

여야의 시계는 모두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었다. 의회 권력을 가져와 거야의 반대를 넘어서려는 여당, 의회 권력을 지켜내 정권 탈환에 나서려는 야당의 계산속에 ‘정치’는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지난 1년 반 여야가 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선거판을 연장해온 것이다.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총선이 그 연장전의 클라이맥스가 될 판국에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최근 정치판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유일하게 뭔가 바뀔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던 이 사건은 그러나 며칠 뒤 원점으로 돌아갔다. 범죄가 소명된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아리송한 사유와 함께 이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극한 대결의 정치판이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윤석열과 이재명이 다시 맞붙는, 대선 같은 총선을 치르게 될 듯하다.

연장전을 준비하는 여야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이 과연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건지 의아스럽다. 누가 뭐래도, 어떤 후보를 내놔도 자기 당을 찍을 고정 지지층,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 여당은 공산세력이니 반국가세력이니 하는 강경 보수 메시지를 반복해 꺼내고, 야당은 극성맞은 개딸 입맛에 맞춰 가결파 징계 같은 비민주적 행태를 버젓이 자행한다. 선거는 중간지대의 표를 더 많이 가져가는 쪽이 이기는 시합인데, 그런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중도층이 이렇게 철저히 무시당하는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아마 연장전이라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극단적 진영 대결을 벌였던 대선의 관성이 여전히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 마땅히 뒤따랐어야 할 화해와 통합의 정치적 치유 과정이 생략된 탓에 그 연장전 역시 같은 방식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그렇게 사생결단의 총선을 치르고 나면, 대선에서 겪었던 네거티브와 가짜뉴스의 진흙탕 싸움을 다시 거쳐 승패가 결정되면, 과연 정치가 달라질까. 연장전이 또 다른 연장전을 부르는 양극화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선거판 같은 정치판이 총선 이후 다음 대선까지 다시 펼쳐질 게 뻔하다.

축구에서 연장전에 들어가면 감독들은 대개 선수를 교체하거나 작전을 수정하는데, 전술에 변화를 줘서 팽팽한 경기의 판을 흔들려는 것이다. 스포츠에선 이미 공식이 된 연장전의 전략을 여야가 눈여겨봤으면 한다. 지금 30%에 육박하는 무당층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여야의 정책이 아니다. 정책노선이 정반대에 가까우니 한쪽이 싫었다면 다른 쪽에 갔을 것이다. 그들은 여야의 정치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혐오를 부추기는 진영 논리와 대결 정치에 희망을 접은 사람들이 이제 중간지대에서 연장전의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그럼 답은 빤하지 않은가. 정치에 변화를 줘서 판을 흔드는 쪽, 지금까지와 다른 정치를 하는 쪽이 표심을 얻을 것이다. 총선 앞에선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곳이 여의도라는데,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를 바꾸는 기적 같은 일도 한 번쯤 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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