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오류로 일시적 지연" 해명
판매자들 "기업회생 가능성" 우려
작년말 발란 카드결제 30% 뛰어
업계선 "곧 무슨 일 나겠다 생각"
27일 발란 본사가 입주한 서울 역삼동 오렌지플래닛 1층 로비에 공지문이 붙었다. 공지문엔 ‘10층 발란 전 인원 재택근무’라고 적혀 있었다. 발란 사무실이 있는 10층은 전날부터 외부 방문객 출입이 봉쇄됐다. 발란에서 정산금을 받지 못해 부랴부랴 이곳으로 달려온 셀러(판매자)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발란과 거래한 지 4~5년 됐다는 한 셀러는 “5000만원가량을 못 받았다”며 “담당 바이어와 지난 24일부터 통화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셀러는 “1~2월부터 정산이 늦춰져 1~3월 판매분 정산이 싹 다 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란의 전략은 쿠폰 행사를 통해 더 낮은 가격에 파는 것이었다. 명품 구매 시 백화점, 면세점 대신 온라인을 선택하는 소비자 대부분이 가격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 착안했다. 10~20% 할인 쿠폰을 대규모로 뿌려 구매를 유도했다. 광고비를 많이 내는 셀러를 상대로는 10%, 15% 할인 쿠폰을 발행해 최저가 상품에 등록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역효과를 냈다. 쿠폰 비용을 떠안느라 대규모 적자가 쌓인 것이다. 발란의 영업적자는 2022년 373억원에 달했다. 회사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2023년 마케팅 비용을 최대한 통제했는데도 1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소비 트렌드가 급격히 바뀐 것도 발란의 위기를 증폭시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동안 ‘스몰럭셔리’는 MZ세대의 소비를 대표하는 키워드였다. 골프, 오마카세, 명품 등 럭셔리 시장에 20, 30대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자 작년부터 이런 흐름이 급격히 꺾였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조차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 감소했을 만큼 명품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발란의 이번 미정산 사태는 티몬, 위메프의 미정산 사태와 여러모로 닮았다. 티몬, 위메프는 작년 7월 초 미정산 사태 발생 초반 셀러들에게 “시스템상 오류로 인한 일시적인 정산 지연”이라고 해명했다. 시스템 오류만 바로잡으면 곧바로 정산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발란도 비슷하다. “과거 거래와 정산 내역에 대한 정합성 확인이 필요하다”며 “재정산 작업을 마치는 대로 지연 이자까지 함께 지급하겠다”고 했다. 셀러들이 “티메프처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미정산 사태 직전 대대적인 할인 판매에 들어간 것도 비슷하다. 티몬, 위메프는 작년 상반기 특가 상품을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이 가운데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도 있었다. 발란도 비슷했다. 작년 하반기 대대적인 할인쿠폰 행사를 했다.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지난해 11~12월 발란의 결제액(보정치)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뛰었다. 한 셀러는 “평소 대비 훨씬 높은 할인율의 쿠폰을 발행했다”며 “무슨 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정산 사태가 발생하자 임직원이 곧바로 재택근무로 전환한 것도 똑같다. 티몬, 위메프는 셀러뿐 아니라 소비자들까지 몰려와 본사가 아수라장이 됐다. 발란은 아직 피해를 봤다는 소비자는 없지만, 셀러가 몰려올 것에 대비해 재택근무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