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간첩단 北 지령문에 걸린 암호...열쇠는 ‘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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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7.11. 오후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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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이 지난 5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공안당국이 북한 공작원과 해외에서 접선하고 북한 지령에 따라 활동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을 수사할 당시 유명한 우리 속담으로 된 ‘암호자재(暗號資材)’를 찾아내 북한 지령문 분석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11일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공안당국은 지난 1월 민노총 등 압수 수색을 통해 전 민노총 조직쟁의국장 A(52)씨 등에게서 북한 지령문 90건과 보고문 24건 등 114건의 문건을 확보했다. 이 사건 수사로 확보한 북한 지령문 90건은 역대 국가보안법 사건 중 최대였다.

그런데 산적한 북한 지령문을 앞에 두고도 공안당국은 이 문건에 걸려있는 ‘암호자재’를 찾지 못해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암호자재’는 보안 문서를 열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공안당국이 결국 찾아낸 것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우리 속담이었다. A씨의 문건을 살피던 한 공안당국 관계자가 파일 중간에 ‘rntmfdltjakfdlfkeh…’라는 특이한 배열의 알파벳 32자를 찾아냈는데, 키보드 자판에 이 영문 그대로 입력하자 한글로는 이 같은 유명 속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 공안당국은 문건에 삽입된 암호기술인 스테가노그래피까지 찾아내고 북한 지령문 각각의 내용 파악을 끝마쳤다고 한다.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1.31/뉴스1

공안당국이 이렇게 파악한 문건에는 북한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이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진행되던 2019년 10월 “촛불 시위 관련 선동 구호를 많이 내고 노동자 결의 대회, 노조별 집회·시위·행진을 통해 민심을 최대한 견인해 나갈 것”이라는 지령을 하달하고, 2021년 7월에는 “조선일보 폐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운동에 민주노총 회원들을 광범위하게 참가시키라”는 지령도 포함됐다고 한다. 또 북한 최고위층의 관심사로 알려진 ‘선진 양마(養馬·말 기르기) 기술’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라는 내용도 지령문에 있다고 한다.

공안당국은 지령문을 통해 북한 문화교류국이 A씨 등에 주기적인 충성맹세를 요구하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은 2018년 12월 3일 A씨 등에 “새해와 1월 8일(김정은의 생일)을 맞으며 총회장님(김정은)께 드리는 축전을 15일 전까지 보내줬으면 한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A씨 등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성맹세문과 사상학습 결과를 주기적으로 보고하며 지령을 이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는 이런 수사 내용을 종합해 지난 5월 A씨 등 민노총 전직 간부 4명을 구속 기소했다. A씨 등 간부 4명 중 일부는 지난 5일 첫 공판을 앞두고 돌연 재판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고, 이후 다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상황이다.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피고인 측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항고, 재항고 등 불복절차를 밟을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기간 동안 재판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피고인 측이 구속 기한을 넘기기 위해 의도적인 지연 전략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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