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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항렬자

2022.04.15. 오전 9:00
by 장유승

오행상생에 따라 항렬자를 정하는 관습은 조선 중기부터 뚜렷이 나타난다. 이 시기부터 조선 사상계를 지배한 주희(朱熹) 탓이다. 주희의 부친은 주송(朱松), 아들은 주숙(朱塾), 손자는 주감(朱鑑), 증손은 주잠(朱潛)이다. 5대가 목화토금수의 오행상생 순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작명가들은 오행상생을 작명의 철칙으로 여긴다. 항렬자를 결정하는 문중 역시 오행상생을 철칙으로 여긴다. 조선후기에 오행상생순 항렬자가 많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외도 많다. 오행상생과 무관하게 독특한 항렬자를 전통으로 삼은 집안도 많다.

주자 영정, 국립민속박물관, 주자 일가의 이름은 조선후기 작명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말의 요승 신돈을 탄핵하여 명성을 날린 이달충(李達衷, 1309~1385) 후손의 이름자는 전부 ‘입(立)’이 들어간다. 아들은 준(竴), 전(竱), 수(䇕), 굉(竑), 손자대의 항렬자는 상(商)으로 윗부분에 ‘입’이 있다. 증손대의 이름은 모두 외자로 ‘입’자 변이다. 현손대의 항렬자는 정(靖)으로 왼쪽에 ‘입’이 있다. 6대손은 종손 인방(仁旁)만 이름에 ‘입’이 들어가지만, 다시 7대손의 이름은 모두 외자로 ‘입’자 변이며, 8대손은 아예 항렬자가 ‘입’이다. 9대손의 항렬자는 음(音), 10대손은 언(彦), 11대손은 의(意)로 모두 ‘입’이 들어가는 글자다. 일설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이달충이 세운[立] 절개를 기려 자자손손 이렇게 이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는데,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누가 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문의 전통임은 분명하다.

만가보, 한국학자료포털. 이달충의 후손은 대대로 입(立)자가 들어가는 글자로 작명했다.

신장(申檣, 1382~1433)은 네 아들을 두었다. 자기 이름이 돛대[檣]라서 그런지 아들 이름에 모두 배 주(舟)자를 넣었다. 첫째가 맹주(孟舟), 둘째가 중주(仲舟), 셋째가 숙주(叔舟), 넷째가 말주(末舟)이다. 이중 셋째 신숙주가 가장 출세했고 후손도 번성했다. 신숙주의 후손들은 수(水)와 목(木)이 들어가는 글자를 즐겨썼다. 배[舟]는 나무[木]로 만든 것이며 물[木] 위를 다니기 때문이다. 신숙주의 아들, 손자, 증손, 현손의 이름은 모두 물 수변, 6대손과 7대손은 나무 목변, 그 이후의 후손들은 물 수변과 나무 목변을 혼용했다.

신숙주 초상, 보물 613호. 신숙주의 후손은 물 수변과 나무 목 변을 이름자로 즐겨썼다.

여말선초 한산이씨 가문의 항렬자도 독특한 전통이다. 이곡(李穀, 1298~1351)의 이름 ‘곡’은 곡식을 뜻하며 벼 화(禾)가 들어간다. 그의 아들이 이색(李穡, 1328~1396)이다. ‘색’은 농사짓는다는 뜻이며 역시 벼 화(禾)가 들어간다. 이색의 세 아들은 종덕(種德), 종학(種學), 종선(種善)이다. 돌림자 종(種)은 곡식을 ‘심는다’는 뜻이다. 종덕, 종학, 종선의 아들 이름에는 모두 밭 전(田)이 들어가고, 그 다음 대에는 흙 토(土)가 들어간다. 제법 오랫동안 이어진 가문의 전통이다.

권근(權近, 1352~1409)의 이름은 『주역』의 “가까이 자기 몸에서 취한다[近取諸身]”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몸과 관련된 글자를 넣어 작명했다. 권근의 아들 항렬은 발 족(足), 손자 항렬은 눈 목(目)과 손 수(手), 증손 항렬은 마음 심(心)이 들어가는 글자로 작명했다.

이준(李埈, 1540~1623)은 세 아들의 이름을 이대규(李大圭), 이원규(李元圭), 이치규(李稚圭)로 지었다. 이준의 설명에 따르면 규(圭)는 예식에 사용하는 옥(玉)이며 이름자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옥을 생각하며 덕을 아름답게 만들라는 의미를 담았다. 옥을 뜻하는 글자가 많은데 굳이 규(圭)자를 쓴 것은 선조의 이름 중에 흙 토(土)가 들어간 글자가 많기 때문이라 했다. 이준의 이름[埈]에도 흙 토가 있다. 조상이 사용한 변자(邊字)를 그대로 사용한 걸 보면, 오행상생의 순서 따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관동별곡>의 작자로 유명한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아버지는 유침(惟沈), 할아버지는 위(潙)이다. 모두 물 수변이다. 정철의 형 자(滋), 소(沼), 황(滉) 역시 모두 물 수변이다. 정철의 아들 항렬자는 명(溟)으로 물 수변, 손자 이름은 외자인데 물 수변이다. 증손의 항렬자는 하(河)로 역시 물 수변이다.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집안이다.

송강가사,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송강 정철의 가사집이다. 정철 집안은 5대에 걸쳐 물 수(水)를 넣어 작명했다.

유상운(柳尙運, 1636~1707)은 자기 이름이 수레를 뜻한다고 했다. 수레는 운송[運]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후손들에게 토(土)와 목(木)이 들어가는 글자로 작명하라고 당부했다. 수레는 나무[木]로 만든 것이며, 땅[土] 위를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상운 손자의 항렬자는 흙 토가 들어가는 원(垣)이다. 증손의 항렬자는 동(東), 현손의 항렬자는 수(洙)로 모두 나무 목을 포함하는 글자다.

이상은 모두 오행상생과 무관하게 같은 변의 항렬자를 대대로 사용한 집안이다. 피휘 관념이 정착되어 조상의 이름과 같은 글자는 사용하지 않지만 같은 변은 상관없다.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다. 조상과 후손이 같은 변의 글자를 사용하는 관습은 경주이씨, 안동권씨, 여주이씨, 영일정씨, 문화유씨, 모두 내노라하는 명문가의 전통이다.

이처럼 가문마다 독특한 작명 전통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사라졌다. 주자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고유한 작명 전통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차츰 주희 일가처럼 목화토금수 오행상생의 순서를 천편일률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조선후기에 오면 오행상생 순서에 따른 항렬자는 보편적인 관습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이것이 작명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항렬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항렬마다 사용하는 돌림자를 기록했다. 어느 집안의 항렬표인지 알 수 없으나 오행상생의 순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조선후기에 일반적인 작명 방식이었다.

영남 선비 이식(李埴, 1463~1502)의 이름자는 흙 토(土)변이다. 아우 이름이 이우(李堣)이니 흙 토는 항렬자에 해당한다. 오행상생 순서를 따르자면 아들 이름은 쇠 금(金)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식은 물 수(水)변을 골랐다. 이것은 상생에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상극(相克)에 해당한다. 성명학자들의 주장을 따르자면 물 수변으로 이름지은 아들은 아비도 몰라보는 호로자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식의 아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퇴계 이황(李滉)이다.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한문 문헌을 번역하고 연구한다. 『정조어찰첩』, 『한국산문선』, 『조선잡사』를 썼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으로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동아시아의 문헌교류』로 한국출판학술상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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