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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클래식 38. 생동감 넘치는 음식 산낙지, 히나스테라의 '현악사중주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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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이

공식

2022.05.16. 14:049 읽음

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프로그램 노트에 담긴 클래식'을 맛있게 각색하여 올리고 있으니 원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낙지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비타민, 철분, 인이 많이 함유되어 혈액순환을 돕고 빈혈 예방 효과를 주며, 피부 탄력 재생에 도음을 많이 주는 음식입니다. 볶아서 먹거나, 무침, 호롱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는 음식인 산낙지, 그런데 몇 년 전,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역의 최민식이 이 낙지를 산 채로 씹어먹는 장면이 등장하며 외국인들에게 이 '산낙지'가 챌린지 음식, 엽기 음식으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산낙지


'산낙지회'라고도 불리는 산낙지는 말 그대로 낙지를 불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날 것으로 먹는 것입니다. 낙지나 문어, 오징어와 같은 빨판이 있는 연체 동물들은 죽은 후에도 신경이 계속 반응을 하기 때문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살아있는 듯 꿈틀거립니다. 내장을 제거해 여러 토막을 내 참기름과 깨로 가볍게 양념을 해서 먹는 산낙지는 접시 위에서 죽었는데도 죽지 않은 것처럼 계속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을 굽거나 삶아먹는데 익숙하고, 회, 육회와 같은 날음식을 자주 접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산낙지는 그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입 안에서 빨판이 달라붙기도 하며 생동감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산낙지와 닮은 클래식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https://youtu.be/aUkzrGcorI4

필자가 직접 연주한 히나스테라의 '현악사중주 1번'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의 작곡가인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Alberto Ginastera, 1916-1983)'는 탱고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1921-1992)'에게 클래식 음악의 작곡과 편곡, 화성의 기초 등을 가르친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부모님 아래에서 음악에 두드러진 재능을 보였던 히나스테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윌리엄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 최고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손꼽히는 '아론 코플랜드 (Aaron Copland, 1900-1990)'에게 작곡을 배운 히나스테라는 1953년부터 아르헨티나 국립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68년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70년부터 사망 때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히나스테라 [출처: 구글이미지]


'돈 로드리고 (Don Rodrigo, Op.31)'을 비롯한 3개의 오페라, 2개의 피아노 협주곡, 2개의 첼로 협주곡, 소프라노 독창과 53개의 타악기를 위한 '마법의 아메리카를 위한 칸타타 (Cantata para America Magica, Op.27)'와 같은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의 민족성이 드러나는 음악 작품들을 많이 작곡한 히나스테라의 별명은 '신교도 목사'였습니다. 이 별명은 자신보다 5살 어린 제자 피아졸라가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 클래식 음악가로의 전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떠오르는 신진 작곡가였던 히나스테라의 첫 제자가 되어 5~6년의 시간동안 사제의 연을 이어갔는데요. 피아졸라는 자신과 달리 매우 내성적이며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니던 히나스테라에게 '신교도 목사'와 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며 이런 별명을 지어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깨와 참기름으로 양념을 한 산낙지 [출처: 위키피디아]


신교도 목사라는 별명과 달리 히나스테라의 음악은 매우 강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곡이 바로 그가 1948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1번 (String Quartet No.1, Op.20)'입니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잔잔한 분위기의 3악장을 제외한 모든 악장이 매우 빠르면서도 유머러스함이 잘 느껴지는 곡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Allegro)'는 마치 전쟁터가 연상되듯 치열한 대립과 강렬함이 인상적인 악장입니다. 마치 접시에 달라붙은 산낙지와 그 빨판을 떼어내기 위한 젓가락의 첨예한 대립이 느껴집니다.
2악장 '비바치시모 (Vivacissimo)'는 빠른 패시지 속에서 2대의 악기와 다른 2대의 악기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간신히 떼어낸 산낙지를 빠르게 입 안으로 집어넣지만, 입 안에서도 산낙지 빨판과의 혈투가 이어지는 느낌과 닮아있습니다.
3악장 '칼모 에 포에티코 (Calmo e Poetico)'는 2악장과 극단적인 분위기의 악장으로, 매우 느리고 기도하는 듯한 조용한 악장입니다. 드디어 잠잠해진 산낙지의 고소함과 식감을 은은하게 느끼는 고요한 순간과 닮은 경건한 악장입니다.
마지막 악장인 4악장 '피날레: 알레그라멘테 루스티코 (Finale: Allegramente rustico)'는 마치 4명의 연주자 중 한 명이 자꾸 어긋나게 틀리는 것처럼 연주하는 매우 익살스러운 느낌의 곡입니다. 산낙지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 그 독특한 첫인상에 기겁을 하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계속 시도를 해보고, 그를 바라보며 응원을 하거나 웃음보가 터진 동행인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악장입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독특한 음식이자 꿈틀대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산낙지와 매우 잘 어울리는 맛있는 클래식 음악, 히나스테라의 현악사중주 1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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