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AI반도체’ 생태계 만들 때다[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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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엔비디아 엄청난 속도로 성장

한국은 ‘AI용 메모리’로 도전

성과에도 융합형 수요 불투명

삼성·하이닉스 메모리 역량과

스타트업 협력 땐 경쟁력 충분

정부 지원도 이 방향 집중해야


최근 인공지능(AI)반도체 대표 주자인 엔비디아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은 265%, 총이익은 769%나 급증했다. 시장 전망을 훨씬 뛰어넘은 실적에 하루 만에 주가가 16% 이상 올라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6월에 1조 달러를 넘어선 지 단 8개월 만에 2조 달러를 넘었는데, 이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절반도 안 걸렸을 만큼 빠른 속도의 성장이다. 이렇게 가파르게 성장하는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및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도 AI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스타트업이 AI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피온, 리벨리온, 퓨리오사AI와 같은 기업들은 이미 AI반도체 개발에 성공했으며,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비교해 높은 성능을 보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 딥엑스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가전박람회(CES)에서 3개의 혁신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여러 고비가 남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 제품이어서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AI반도체를 만들기보다는 메모리 반도체를 AI에 특화시킨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AI용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지난 1년간 1.7배 올랐다. 다만, 같은 기간 주가가 3.4배 증가한 엔비디아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AI반도체인 GPU보다 메모리 반도체인 HBM이 부가가치를 낮게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AI용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이 메모리 반도체는 GPU와 같은 프로세서를 메모리에 내장하는 혁신적인 제품으로서, 기존 HBM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AI를 처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세서 융합형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메모리의 기능이 좋아지게 되면 GPU의 역할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엔비디아 같은 GPU 회사가 선뜻 채택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성능이 더 향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문제는, 엔비디아와 같은 회사가 이 제품을 채택할지 하지 않을지는 불확실하므로 기술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메모리 중심의 대기업과 프로세서 AI반도체를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이 가능한 관계다. 대기업이 개발한 AI용 메모리를 스타트업이 개발한 AI반도체와 연결해 사용하면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이 회사들이 협력해 대기업의 AI용 메모리를 중심으로 스타트업의 AI반도체가 연동하는 한국형 AI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많은 지원을 해 왔는데, 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방향이었기에 스타트업이나 연구소 또는 대학에 집중 지원됐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정부의 지원으로 개발한 기술의 공유나 유출을 우려해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AI반도체를 위한 정부 지원의 경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한국형 AI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에 AI반도체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되 대기업의 메모리 반도체와 연동하게 한다면 두 기업 간 기술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연구소나 대학에도 국산 AI반도체와 메모리를 활용한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산학연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 연구소와 대학이 협력하는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그 결과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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