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피고인이 스스로 죄를 실토하더라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 증거재판주의를 둘러싼 증거에 관한 여러 원칙 중 하나다. 자백 외에 추가 증거를 요구하는 이유는 허위 자백으로 인한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자백 강요로 인한 인권 침해를 막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자백을 보강하기 위해 어느 정도 추가 증거가 필요한지는 여전히 법관 판단에 따라 갈린다.
대법원은 자백의 보강 증거가 피고인 자백이 진실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충분하다고 본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사기관은 자백이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범죄에서조차 자백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가 많다. 만약, 수사기관 압박에 굴복하거나 여러 다른 이유나 사정으로 일단 허위 자백을 하고 나면 이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허위 자백으로 벌금을 내는 정도로 가볍게 끝나거나 선처를 받을 것이라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판사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변호인도 있는데 허위 자백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허위 자백이 없었다면 도저히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을 만한 증거를 보강 증거로 삼아 유죄 판결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허위 자백만큼 위험한 게 허위 증언이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자신의 재판 진행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 법정을 촬영한 후 스스로 또는 동료 판사와 돌려 보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을 동료들과 함께 시청하면서 소름 끼친 적이 있다. 성폭력 사건 증인으로 출석해 정말 슬프고 괴로운 모습으로 울면서 성폭력 사실을 증언한 피해자가 증언을 마친 직후 뒤돌아선 모습 때문이다. 불과 몇 초 전에 울면서 증언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누가 보더라도 정말 거짓말을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표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피식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당시 재판장이었던 나는 뒤돌아 나가는 증인 뒷모습만 봤기에 그건 몰랐다. 비공개 재판으로 법정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오로지 천장에 매달려 있던 비디오카메라만이 목격했다. 피고인은 천신만고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마도 그 영상을 돌려 보지 않았다면 피고인은 그대로 성폭력 전과자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피고인 자백뿐 아니라 이처럼 피해자 진술만을 믿어 쉽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판사로서는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운전 중 도로 맞은편 차선에서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 온 SUV 차량으로 인해 나를 앞서 달리던 소형 승용차 운전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중앙선을 침범해 빠른 속도로 내달린 상대 차선의 차량 운전자를 원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앙선을 넘은 것은 SUV가 아니라 나와 같은 차선의 소형 승용차였다. 나를 제외하고 그곳에 웅성거리고 서 있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증언했고, 객관적인 상황도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나중에 들었다. 아마 그날 홀로 목격했다면 상대 차선 차량 운전자가 가해자임이 분명하다고 확신에 찬 어투로 증언해줬을 것이다. 내 차선에서 바로 앞서가던 차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그게 소형 승용차였다는 사실, 상대 차선 차량이 나를 향해 돌진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다행히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인식이 그날 나의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이후 20년간 재판을 하면서 그 교통사고를 절대 잊은 적이 없다. 확신에 찬 그 누구의 증언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허위 증언일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