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프로그램 노트에 담긴 클래식'을 맛있게 각색하여 올리고 있으니 원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학자였던 ‘주흥사 (470-521)’가 양무제의명을 받아 지은 교본인 ‘천자문’은 말그대로 100자의 한자를 익히는 한문 교습서입니다. ‘하늘 천 (天) 땅 지 (地) 검을 현 (玄) 누를 황 (黃)’으로 시작되는 이 천자문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데요. 이 천자문은 조선시대 서당에서 가장 처음 기본으로 배우는 교재이기도 하였습니다.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 풍속화가로 손꼽히는 ‘김홍도 (1745-1806?)’는 1784년, 39세의 나이에 이러한 서당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립니다. <씨름>과 함께 25점의 화첩이 수록된 <단원 풍속도첩>의 첫 번째 작품인 <서당>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김홍도의 <서당>은 천자문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여 현재의 선생님인 훈장님에게 회초리를 맞고 난 후에 눈물을 훔치는 소년의 모습과 그를 바라보는 엄숙한 표정의 훈장, 그리고 둘러앉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동급생들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유쾌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김홍도의 <서당>과 천자문에서 시작하는 ‘하늘천따지’를 토대로 작곡된 현대 음악 작품이 바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곡가인 이영조의 ‘줄풍류 II-하늘천따지’입니다.
줄풍류는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에서 현악기를 중심으로 연주되는 음악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줄풍류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 수 있듯, 이영조가 1995년 작곡한 ‘줄풍류 II-하늘천따지’는 현악사중주를 위하여 작곡되었습니다. 연세대 음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뮌헨 국립음대 최고위 과정, ‘아메리칸 콘서바토리 오브 뮤직’에서 DMA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연세대 교수, 국립 심포니 초대 이사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사단법인 한국 코다이 협회 이사장과 20 Trillion Production Seoul 대표로 활동하며 활발한 작곡 활동을 이어가는 이영조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줄풍류 II-하늘천따지’입니다.
https://youtu.be/GN2l_pBR_Dw?si=6XBz12aIl_1OI2Vo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성주 바이올린 교수의 위촉으로 작곡된 이 ‘하늘천따지’는 김홍도의 <서당>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훈장역할을 하는 제1바이올린이 “하늘천따지” 운율을 선창하면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들이 맡은 학생들이 그 운율을 따라하지만 자꾸 한 음씩을 틀려서 혼이 나고, 결국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습득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학생 역할을 맡은 첼로가 올바른 ‘하늘천따지’의 음을 연주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고 점차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습득의 경지에 오르고, 마지막 즐거운 책거리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멜로디의 ‘하늘천따지’를 토대로 작곡되었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적인 리듬과 다양한 화성을 더하여 서양악기로 전통음악의 멋을 치밀하면서도 세련되게 구현하고 있는 이 작품과 어울리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늘천따지~ 가마솥의 누룽지~와 같은 누룽지는 어떨까요?
천자문을 외던 서당의 학생들이 장난으로 ‘하늘천따지- 검은 밥 눌은 밥’으로 농담을 하다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라고 노래부르게 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말장난처럼 누룽지 역시 길고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취건반’이라고도 불리던 누룽지는 가마치라고도 불리는 밥이 딱딱하게 눌린 음식입니다. 밥은 물의 양이나 불의 세기 등에 따라 설익거나 떡밥, 진밥, 된밥, 그리고 눌은 밥 등 다양한 식감으로 완성되는데요. 밥을 만드는 솥이나 냄비 등의 바닥 부분에 물기가 없이 딱딱하게 눌려 바삭한 과자와 같은 식감을 지닌 것이 바로 누룽지입니다.
고소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이 누룽지는 과자가 비싸고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많은 사랑을 받은 간식거리였습니다.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숭늉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기름에 또 한 번 튀겨 먹거나 설탕이나 라면 스프를 뿌려 다양한 식감의 디저트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누룽지는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하늘천따지’만큼 우리에게 친근한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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